
“힘겹다.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한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서울 강북 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남긴 SNS 글의 한 구절이다. 마치 윤동주의 서시(序詩)처럼 그 맑은 영혼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의사가 있다니”라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치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의 서시)
척을 져야하고 갈라져 살게하고 상대방은 모두 틀리고 나만 옳다는 이런 세상에 임세원 교수가 준 울림은 세상을 다 치유할 만큼 컸다.어느 정치인이, 또 어떤 예인(藝人)이나 지식인들이 우리를 이처럼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게서 희망을 봤고 우리 모두를 성찰하게 하고 있다. 각박한 의료현장에서 터질 것 같은 스트레스를 한 줄의 글로 달래며 살아갔던 ‘시인’ 임세원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의 사유와 치유의 길에서 뜻밖으로 '윤동주 시인'을 만났다. 또 그 의사에 그 유족들이다. 임세원 교수의 유족들은 ‘마음 아픈 사람’들이 편견 없이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골든아워’란 책을 통해 응급의료 현장의 민낯을 공개한 아주대 이국종 교수와 임 교수의 이런 이타적인 의료인 인생을 우리 사회는 포용할 자격이라도 있을까.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가슴 따뜻한 맑은 의사들의 노고에는 다시한번 큰 절로 감사드린다. <고윤희 기자>
(※다음은 임세원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입니다. 윤동주의 서시와 비교하면서 읽으시면 그의 마음을 캐기가 더욱 쉬울 것 같아 올렸습니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 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너무 어려운, 그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 당신의 삶에 기회를 조금 더 주어보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