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03:45 (수)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17) 전부처 동원해 물가 단속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17) 전부처 동원해 물가 단속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0.06.29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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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와 한국은행, 물가오름세 심리에 부체질' 판단해 강공책
韓銀의 빈번한 도매물가지수 발표제동 … 통계업무 기획원 이관
1970년 후반부터 물가 잡히자 언론들은 앞다퉈 "긴축 정책 지지"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쓰루가 경제기획원 차관이 된 이래 늘 골머리를 썩여왔던 것이 물가였다. 그는 한국의 물가 상승은 객관적인 요인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강하다고 보았다.

즉, 환율 상승(평가절하)이나 해외물가 상승, 임금 상승 같은 '합당한' 물가 상승 요인 자체보다는 인플레 기대심리, 즉 '환율이 올랐으니 물가가 더 오르겠구나' 하는 소비자의 심리 또는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더 오르기 전에 내 물건값을 올려놓아야겠다'는 업자들의 심리가 더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물가 상승 심리는 학자나, 특히 한국은행 등 '좀 안다'는 사람들의 '전문가적 식견'이 부채질한다고 보았다.

그 때문일까? 쓰루는 부총리가 되자 한국은행에 메스를 가했다. 한국은행은 당시 열흘에 한 번씩 전국도매물가지수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그는 '한국은행이 너무 자주 물가 동향을 발표하여 인플레 심리를 부추긴다'고 보았다.

부총리 취임 2개월 뒤인 1969년 8월 11일에 쓰루는 한국은행이 수십 년 해오던 도매물가지수 통계조사 업무를 (다음 해 4월부터) 기획원 통계국이 맡도록 결정해버렸다. (이 정책 전환에 카리스마 넘친 황병태 통계국장의 입김이 감지된다.)

통계 업무 일원화를 통한 예산 절약과 통계 일관성 등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한국은행의 '자율적인' 물가 통계 발표가 쓰루의 속을 불편하게 했다고 세상은 짐작하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한국은행의 자율성을 저해한다', '한국 정부 통계의 공신력이 떨어진다', '통계 업무를 어용화한다' 등등 온갖 비난과 우려가 쏟아졌으나, 물가 통계와 더불어 인플레 기대심리를 손안에 쥐겠다는 쓰루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1969년 11월 3일 쓰루가  재무, 상공, 농림, 건설, 국세청 등 5개부처장관과 함께 물가안정을 위한 ‘5개 당면과제와 10개 항구대책’을 발표하여 그후 2년동안 지속될 ‘종합적’인 물가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당일 매일경제 1면.
1969년 11월 3일 쓰루가 재무, 상공, 농림, 건설, 국세청 등 5개부처장관과 함께 물가안정을 위한 '5개 당면과제와 10개 항구대책'을 발표하여 그후 2년동안 지속될 '종합적'인 물가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당일 매일경제 1면.

그는 물가 안정 대책에 대규모로 또 조직적으로 전 부처를 동원했다. 물가 종합 대책 마련과 발표의 자리에는 재무부, 상공부, 농림부 등 경제부처 장관은 당연직이었고, 국세청장, 치안국장(지금의 경찰청장), 때때로 서울시장까지 '임시직'으로 동원되곤 했다.

전임 박 부총리는 가급적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간접적인 물가정책'을 폈다면, 쓰루는 백병전 수준의 물가전쟁을 불사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더러 협박 공갈도 했다. 그는 '무식한' 관료는 아니었다. 막무가내 가격 통제가 왜곡을 가져오고 경제를 골병들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가와의 각개전투를 벌일 때 기자들이 "근본적인 물가정책을 편다고 해놓고 왜 가격 규제에 치중하느냐"고 물으면, "나도 고상한 물가정책을 펴고 싶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누군가 가격 규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욕을 먹느니 차라리 그냥 내버려둘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누가 하든지 간에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비명과 비난 속에 끈질기게 밀어붙인 긴축 덕분인지, 1970년에 들어 특히 그 후반에 들어 눈에 띄게 안정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은 쓰루의 긴축정책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헌신적 노력을 기울인 김학렬 부총리가 이 같은 청신호를 보고 환호했다는 신문 보도에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긴축정책을 강행하면서부터 도산사태에 부도가 연발하지 않는가. 이런 소용돌이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겨우 안정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니 이를 그대로 견지함으로써 그 청신호가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여태까지의 노력보다 더욱 어려우리라고 생각한다."(중앙일보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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