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5:40 (토)
◇김수종의 취재여록⑧'인류의 始原' 크루거공원
◇김수종의 취재여록⑧'인류의 始原' 크루거공원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0.06.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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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년전 고인류 거주지역과 붙어있어 일부 인류학자 '남아프리카의 에덴'으로 불려
1898년부터 보호… '코끼리 사자 표범 들소 코뿔소' 빅5 포함 147종의 포유동물 서식
사비강가 캠프촌 아프리카 전통 가옥옆 나무아래서 사파리 차 타지않고 동물생태 관찰

2002년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건 야생(野生)이었다. 식물들이 풍토에 맞게 자라고 그 속에 동물들이 서식하는 생태환경을 야생이라 한다면 남아프리카는 아직 야생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10년 전인 1992년 리우지구정상회의 취재 여행을 갔다가 둘러 잠시 본 아마존이 ‘정글의 야생’이라면, 남아프리카에는 ‘사바나의 야생’이 있었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남아공화국 최대의 야생보호 구역이다. 이 국립공원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생물다양성을 뽐내는 것은 그 기후 덕택이다. 이 공원은 남아공의 북동쪽 아열대 기후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의 길이가 350㎞, 동서의 폭이 60㎞로 그 면적이 약 2만㎢이다. 경상북도만 하다. 사진(도로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코끼리 가족)=이코노텔링.
크루거 국립공원은 남아공화국 최대의 야생보호 구역이다. 이 국립공원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생물다양성을 뽐내는 것은 그 기후 덕택이다. 이 공원은 남아공의 북동쪽 아열대 기후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의 길이가 350㎞, 동서의 폭이 60㎞로 그 면적이 약 2만㎢이다. 경상북도만 하다. 사진(도로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코끼리 가족)=이코노텔링.

내가 남아공에서 처음 본 동물이 얼룩말과 원숭이다.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얼룩말은 사람과 거리를 두며 풀을 뜯고 있었다. 관광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데 길가에 조그만 원숭이가 주저앉아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어디선가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떤 여자가 자동차에 탄 채 문을 열고 군것질을 하고 있었는데, 원숭이가 차 지붕위로 올라가 여자가 먹는 과자를 난폭하게 낚아채는 것이었다.

이 두 동물이 노는 것을 보며 세계적 관광지가 된 희망봉이 인간과 야생동물의 충돌지대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많아지고 문명화될수록 이들 동물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를 떠올리며 영화의 주제와 관계없는 아프리카의 야생성을 생각했다.

남아프리카 야생의 진수는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이 공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 하면 사파리 여행으로 유명한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 정도나 연상할 정도였으니까.

크루거 국립공원은 남아공화국 최대의 야생보호 구역이다. 이 국립공원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생물다양성을 뽐내는 것은 그 기후 덕택이다. 이 공원은 남아공의 북동쪽 아열대 기후대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의 길이가 350㎞, 동서의 폭이 60㎞로 그 면적이 약 2만㎢이다. 경상북도만 하다. 여름에 간헐적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겨울에 매우 건조하다. 북쪽은 건조한 사반나 지역이고 강우량이 많은 남쪽은 산림이 발달했다. 사비강과 크로커다일강 등 여섯 개의 강이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이 공원은 16개의 서로 다른 생태구역으로 구분될 정도이다. 이런 규모와 지형에 의해 크루거 국립공원은 평화로운 공생이 있고, 먹이사슬의 팽팽한 긴장이 있는 곳이다.

우리 팀은 사비강가에 있는 스쿠쿠자 캠프촌에 묵었다. 아프리카 전통 가옥모양의 숙박시설과 식당이 강가에 늘어서 있다. 사파리 차를 타지 않고 가장 안락하게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그 큰 귀를 펄럭이는 코끼리 가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캠프촌은 철조망과 그 위에 설치한 감전장치로 맹수들의 공격을 방지하고 있었다. 맹수의 영역을 포함하여 자연을 거의 구미에 맞게 길들여 놓은 인간이 맹수의 위협을 느끼고 보호막을 쳐놓았다는 것이 역설적이었다.

사비강의 8월은 아직 겨울이었다. 하지만 기온을 보고 남아프리카의 계절을 알 수 없다. 밤이면 10℃이하로 뚝 떨어졌다가 한낮이면 30℃를 훌쩍 넘는다. 청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대낮의 햇살은 마치 가시로 찔러대는 듯 따가웠다. 하지만 가지만 앙상한 나무그늘에 서면 서늘해졌다. 아프리카의 계절은 기온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성장을 보고 알 수 있다. 아열대 식물이 현란한 꽃을 피우고 앙상한 관목 숲에서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면, 그것이 남아프리카의 봄이다.

해가 중천에 뜨고 기온이 올라가면 온갖 코끼리를 비롯하여 동물들이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사비강으로 몰려든다. 강물 위에는 하마가 둥둥 떠 있고, 들소는 갈대밭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입을 딱 벌리고 있지 않다면 바위 위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악어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코뿔소, 얼룩말, 기린, 임팔라 등 수많은 종류의 짐승이 물을 마시러 나온다. 이들 짐승의 몸통에는 예외 없이 각종 새들이 장식품처럼 달라붙어 있다. 짐승과 새의 공생관계를 보게 된다.

크루거 국립공원에서는 ‘빅파이브’(Big 5)란 말을 많이 듣는다. 옛날 식민지 시절에 유럽인들이 사냥감으로 가장 선호하던 동물, 코끼리 사자 표범 들소 코뿔소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빅5를 포함하여 147종의 포유동물과 500종의 새가 자연 상태로 살고 있는 곳이다. 이밖에 110여종의 파충류와 49종의 어류가 있어 종의 밀집도가 대단히 높다.

아프리카에 여행을 떠나며 야생에서 보고 싶었던 동물이 사자와 코끼리였다. 크루거 국립공원에는 사자가 2,500마리에 서식한다고 안내인이 설명했다.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운이 좋으면...”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기린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눈 앞에서 기린을 공격하는 사자의 야성을 상상으로 그려보았지만 사바나의 왕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틀 동안의 사파리 나들이에서 사자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 대신 코끼리는 실컷 보았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1980년 120만 마리에서 2002년 당시 약 50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공원감시원은 크루거 국립공원의 코끼리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로 9,000마리를 넘어섰다고 설명해줬다.

관광객이 코끼리에 대한 대접은 극진했다. 코끼리들은 물을 마시러 사비강으로 몰려드는데, 가족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게 특징이었다. 찻길을 건널 때 모든 차량은 정지해서 10마리의 코끼리 가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코끼리가 대단히 영리한 동물이며 나이 들어 가족이 죽으면 1년 후 자녀가 부모가 죽은 곳을 찾아간다는 것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떼를 지어 이동할 때 할머니가 선두에 어린 새끼들이 가운데 서고 어른들은 가장 뒤에 따라간다. 새끼들을 근거리에서 경호하는 임무를 맡는 게 엄마코끼리의 여동생, 즉 이모들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그런 대열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나의 눈에는 크루거 국립공원이 야생 상태가 잘 보전된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달랐다. 유럽인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보여준 야만성은 1,000만 명의 원주민을 잡아 신대륙에 노예로 팔아먹고 다이아몬드와 금은보화를 채취해 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를 원주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변질시켰고, 그 자연환경을 너무 깊이 훼손했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하나의 본보기였다고 한다.

1870년대 금광이 발견되면서 유럽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금을 찾아 땅만 파헤친 것이 아니라, 상아와 뿔 및 가죽을 얻기 위해 사자, 코끼리, 표범, 코뿔소, 들소를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다. 원주민의 자급경제와 먹이사슬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던 동물 수는 격감하고 생태계가 황폐화되었다. ‘빅5’란 말은 이때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용어였다. 천혜의 동물왕국은 유럽인의 사냥터가 되었다. 케냐와 탄자니아를 비롯해 아프리카에서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수많은 야생동물 서식지가 모두 유럽인의 탐욕 앞에 비슷한 운명을 거쳤다.

인간은 그 동안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정복하려고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연을 보금자리로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등장했다. 1898년 당시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신인 트란스발 공화국의 폴 크루거 대통령이 이 지역 일대를 보호지역으로 선포함으로써 국립공원의 기초를 마련했다.

크루거공원이 위치한 트란스발 지역은 인류와 특수한 관계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400만 년 전 살았던 고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케냐를 거쳐 남아프리카 해안으로 이어지는 동아프리카는 고인류의 거주 벨트의 한 부분인 것이다. 나의 수십만 대 조상이 살았던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학자들 사이에 크루거 국립공원이 ‘남아프리카의 에덴’으로 불리는 것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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