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05 (금)
◇김수종의 취재여록⑥韓日월드컵과 남아공의 '뜨거운 겨울'
◇김수종의 취재여록⑥韓日월드컵과 남아공의 '뜨거운 겨울'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20.05.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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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지구환경회의 10년 지난후 '리우+10'정상회의에 NGO일원으로 현장취재
극소수 환경운동가나 학자의 전유물이던 '지구온난화' 문제에대한 저술도 염두
52명의 국가원수와 36명의 총리급 정부 수반 참석했으나 부시대통령 불참 찬물
희망봉서 만난 아프리카 소년 '대한민국'외치자 장사익은 '아리랑' 부르며 감격

2002년은 한국인 모두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해이다. 6월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한국대표팀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의 쟁쟁한 강호를 물리치며 4위를 차지했고, 또 ‘히딩크 붐’을 일으켰다. 월드컵 경기는 1988년의 서울올림픽에 이어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홍보하는 기회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인에게 자존감을 느끼게 했던 행사였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히딩크 감독이 한국 미디어의 광고모델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영향을 알 수 있다.

나는 그해 월드컵 못지않은 경험을 했다. 남아공과 나미비아 등 남아프리카를 여행했다. 2002년 8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리우+10’에 NGO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회의 공식명칭은 ‘지속가능세계정상회의’(The 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였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열린지 10년 후 열린 후속 환경 회의이어서 언론은 ‘Rio+10’이라고 통칭했다.

리우 회의는 유엔본부 취재 기자의 자격으로 갔지만 요하네스버그 회의에는 NGO대표로 참석했다. 나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고 환경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서 직업과 무관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소속은 NGO이었다. 취재 패스도 현장에 가서 받았다. 내가 속한 NGO는 환경운동가 최열이 이끄는 사단법인 ‘환경재단’이었다.

당시 나는 리우 지구정상회의 취재경험을 토대로 환경 책을 쓸 요량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외신을 타고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되곤 했지만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일반인들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을 때였다. 지구온난화는 극소수 환경운동가나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 문제가 멀지 않은 미래에 큰 국제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리우지구정상회의 이후 벌어지는 기후 담론을 대중에게 알리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준비하고 있던 참이다. 이런 의도로 월드컵이 열리기 바로 두어 달 전 중국의 사막과 양자강 산샤(三峽)댐에도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책을 계획한다는 걸 눈치 챈 최열은 어느 저녁 나와 막걸리를 마시며 환경재단 출범 기념으로 출판기념회를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환경 책을 쓰면서 ‘리우+10’도 가보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된다.”고 나를 자극했다. 사실 나는 아프리카를 가본 적이 없는데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애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비싼 여비를 들이고 남아공 여행길에 올랐다.

요하네스버그 지속가능개발정상회의는 2002년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아프리카에서 회의시설이 가장 좋다는 ‘샌턴’(Sandton)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10년 전 리우정상회의에서 제기된 기후변화와 사막화 등 ‘의제21’의 이행과정을 점검하고 향후 10년 간 할 일을 세계 정상들이 토론하는 유엔 행사였다.

194개국에서 52명의 대통령급 국가원수, 36명의 총리급 정부 수반, 12명의 부통령과 20명의 부총리 그리고 63명의 장관이 각국 정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86개의 국제기구와 각종NGO, 기업 대표와 취재진 등 포함하여 회의 참가자가 무려 5만 명이 넘었다.

원래 유엔은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를 6월6일 개최하려 했다고 한다. 그날이 세계환경의 날이다. 그래서 리우지구정상회의도 1992년 6월 6일 개막했다. 8월 하순으로 미뤄진 것은 한·일 월드컵축구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다.

사람은 많이 몰려갔지만 요하네스버그정상회의는 리우정상회의에 비해 세상의 주목도 못 받고 성과도 내지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냉담함 때문이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리우회의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을 실행하기 위해 앨 고어부통령이 전면에 나서 1997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하는 등 화석연료 감축을 위한 기초를 다져놨으나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조지 부시후보가 교토의정서 추진의 주인공인 앨 고어 민주당후보를 꺾고 대통령이 됐다.

부시는 미국경제를 해친다며 도쿄의정서에서 탈퇴했고, 이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달랑 12분간 연설하고 돌아갔다. 한국정부도 총리를 보냈던 리우회의와는 달리 김명자 환경장관을 수석대표로 파견했다.

나는 2002년 남아공을 요하네스버그 리우우리 일행이 케이프타운을 방문했다. 케이프타운의 뒷면을 병풍처럼 에워싼 산이 그 유명한 테이블마운틴(사진/ 최열과 함께)이다. 그 아래 위치한 시그널힐에 올라가자 안내인이 대서양위에 떠 있는 납작한 섬을 가리키며 만델라가 17년간 갇혀있던 ‘로벤섬’이라고 알려주었다. 사진=이코노텔링.
희망봉 등대 주변에 제복을 입은 흑인 소년들이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모잠비크에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 몇 명이 양손을 치켜 올리며 “대한민국!”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붉은 악마의 응원 광경이 TV를 통해 아프리카 소년들에게도 전파됐던 것이다. 사진(대서양과 인도양이 갈라지는 지점이 내려다 보이는 희망봉에서 기념촬영한 필자)=이코노텔링.

이런 미국의 태도에 편승하여 리우+10회의에 실망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조지 맥로언은 “유엔, 세계은행, 그리고 환경관련 공직자들은 아프리카에 나타나 별로 신빙성도 없는 과학을 가지고 삼류 쇼를 벌이고 있다. 10년 전에는 지구온난화를 가지고 리우에 나타나 그들의 일자리를 지키더니, 이번에는 요하네스버그에 나타나 물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친다. 지구의 3분의 2가 물로 덮여 있다. 물은 모자라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 기 소르망도 이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대표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의 의미를 놓고 현학적인 토론을 벌일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자본주의와 환경오염 그리고 국가 간 불평등에 대한 재판을 벌일 것이다.”고 부정적 논평을 냈다.

국내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에도 조류가 있다.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는 부시 정부의 반 환경 정책이라는 역류를 맞고 있었다. 특히 리우회의에서 화석연료문제가 제기되면서 중동 산유국 등 석유수출국들이 부시 대통령의 반 환경 전선에 가담하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주최 대륙 아프리카의 환경과 빈곤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세계 여론의 주목을 끌었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유럽 기업들이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7년 '석유를 넘어서(Beyond Petroleum)'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영국석유(BP)가 주목을 받았다. 또한 빈곤 문제와 물 부족 등 아프리카 대륙의 절박한 문제가 클로즈업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해 6월 열린 월드컵축구의 열기는 2개월이 지난 8월에도 아프리카 최남단희망봉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환경재단 NGO팀이 희망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희망봉 등대 주변에 제복을 입은 흑인 소년들이 수백 명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모잠비크에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 몇 명이 양손을 치켜 올리며 “대한민국!”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붉은 악마의 응원 광경이 TV를 통해 아프리카 소년들에게도 전파됐던 것이다.

소리꾼 장사익이 우리 NGO대표단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년들의 행동을 보고 눈이 동그라지더니 계단위에 올라서서 “대한민국”하고 외치며 엇박자 박수를 유도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소년들이 신이 났다. 장사익은 신이 났던지 잇따라 아리랑을 목청껏 불렀고 소년들은 박수를 쳤다. 희망봉 탑 아래서 벌어진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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