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경제 운용의 방향을 약간 틀었다. 먼저 최저임금과 탄력근무제 실시의 속도를 줄이기로 했다. 돈키호테처럼 ‘소득주도 성장’에 올인 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실물 경제현장에서 들리는 ‘아우성’이 아마도 정부의 고집을 꺾었을 것이다.
꼭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럴 수 밖에 없었느냐는 점에선 만시지탄이다. 하지만 경제현장에 한 발 더 다가선 점은 평가할만하다. 문제는 갈 길은 먼데 아직 경제정책 불신감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란 점이다.
‘소득주도의 성장’은 한 면만 보고 종합적인 경제의 파장을 외면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런 성장의 패러다임은 교과서에 없다고 지적을 했다고 해서 덩달아 꼬집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정부가 이 정책의 실효성을 믿었다면 정부안에 바른 소리하는 사람이 없었던 결과고 아직도 그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이 정부는 집권 내내 ‘소득성장’의 역풍에 시달릴 것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중소기업, 아니 동네 치킨집 사장님의 형편을 한 번이라도 살펴봤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문을 닫거나 사람을 줄이던지, 아니면 치킨 값을 올리든지 해야하는 데 가격을 올렸다간 손님이 끊길까 봐 두렵고 문을 닫자니 가족들의 얼굴이 떠 올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내가 덜 자고 덜 버는 수밖에 어디 있느냐.”
이런 아우성이 터진 지 1년이 넘었다. 생계형 일자리 마저 정부가 없애버린 꼴이 됐다. 그래도 정부는 가는 방향이 옳으니 후퇴할 생각이 없다는 고집을 부렸다.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하는데 누가 반기지 않을까. 그러나 고작 시간당 몇 천원인데 이 난리냐며 힐책했던 정책당국자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사업을 안 해보거나 스스로 돈으로 벌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다. 정책과 실물경제가 겉돈 가장 큰 이유다. 방향이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경제는 이해관계자가 혼재한 종합경기장이다. 한 곳을 치유하면 다 풀리려니 하고 무소의 뿔처럼 가기보다는 그냥 놔두는 편이 어떤 때는 낫다. 서로 치고받으면서 경쟁해서 살아남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다. 잠 좀 덜자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똑같이 그리고 같이 잘사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저소득계층과 저학력자 등 이른바 경쟁의 낙오자들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외국어를 값 싸게 배우거나 기술을 익히는 곳을 늘려야 한다. 세금은 그렇게 경제 생태계를 가꾸는데 쓰는 것이다. 기술과 외국어를 배울 곳이 잘되면 대졸 고학력자들의 취업 문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손에 쥐어 주는 시책은 당장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경제를 멍들게 하고 후손들에게 짐을 물려주는 후안무치한 시책이다. 그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노 브레인’(No Brain) 아이디어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고 그러면 기업들이 나서서 투자를 해 일자리를 만든다.’ 이런 선순환 경제와 얼핏 비슷할지 모르지만 소득주도 성장의 경우, 첫 단추가 틀렸다. 소득은 경제가 좋아져 기업들이 돈을 많이 줄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기업더러 그렇게 하라니 전제조건부터 어긋났다. 어떤 경우에도 ‘경쟁과 효율’을 떠나선 건강한 경제체질를 갖출 수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하고싶다”고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싶진 않다. 아마도 소득이 자연스럽게 오르도록하고 싶다는 뜻일 게다. [이코노텔링]은 17일 발표한 홍 부총일의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보고서에서 빠진 내용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노동시장 개혁의 구체적인 프로세서가 없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지 않고선 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어떤 중소기업은 “일 잘하는 비정규직을 더 쓰고 싶고 임금도 올려 주려고 했는데 2년넘게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해 포기했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2년이 되면 또 실직자가 된다. 경쟁 논리가 작동이 안된다. 일 잘하면 1년내에도 정규직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3년,5년 동안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들은 업무의 숙련도를 높이고 자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시간도 벌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경쟁’은 싫지만 가야 하는 길이고 그 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나라가 ‘하향 평준화’의 C급 국가로 전락하는 일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