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1:25 (목)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8) '그때 그들' ㊤伊지도자가 빚은 '참사'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8) '그때 그들' ㊤伊지도자가 빚은 '참사'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0.04.13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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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과 관광의 대국서 유럽의 만성 경제환자로 추락한 이태리 속사정 조명
막대한 재정적자와 초고령화 사회진입…코로나에 취약해져 대량감염 불러

"아, 이탈리아는 꼭 피했어야 했는데...."

이탈리아가 코로나19의 온상이 되기 시작하자 독일 메르켈 총리가 한탄조로 했던 얘기다.

코로나19의 병세(病勢)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문제가 되겠지만 특히 이탈리아를 콕 찍어 이렇게 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 메르켈 총리가 이탈리아에 코로나19에 대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이탈리아의 운명에 EU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필연'일 수는 없겠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탈리아는 대국(大國)이다. '오래됐다'는 이미지는 그리스와 비슷하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다. 이탈리아가 G7(선진 7개국)의 회원국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명목총생산(GDP)는 약 2조 달러로 영국과 프랑스에 이러 세계 8위 수준이다. 3만3000달러 수준의 1인당 GDP 역시 이탈리아가 세계 초 부유국임을 알려 준다. 참고로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만1250달러로 이탈리아를 조금 밑돈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서양 문명의 시발점이며 세계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가톨릭의 본산이다. 역사ㆍ문화ㆍ문명ㆍ종교의 중심지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역사의 나라’이자 ‘명품의 나라’다. 사진은 2000년 전 만들어진 콜로세움 경기장.
이탈리아는 '역사의 나라'이자 '명품의 나라'다. 사진은 2000년 전 만들어진 콜로세움 경기장.

그밖에도 이탈리아가 좋은 평가를 받는 분야는 많다. 페라리, 펜디, 불가리, 구치, 발렌티노 등 이탈리아에는 세계 최강의 명품 브랜드가 여럿 있다. 이탈리아가 '명품의 나라'로 불리며 세계 최고급 이미지를 갖는 것도 이해가 될 것이다.

명품 페라리.
명품 페라리.

이처럼 인류의 문명을 밝힌 긴 역사에 명품 이미지를 갖는 이탈리아를 보겠다는 사람 또한 많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2017년 기준 연간 관광 수입이 763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8위 관광대국이기도 하다. 여기에 이탈리아는 '건강대국'이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 나라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3%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고령자 천국'이다.

펜디.
펜디.

그럼에도 이탈리아가 유럽의 '만성병 환자'라는 얘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됐다. 도무지 발전이나 성장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발전을 보여주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대표적인 사례. 미국발 경제위기 발발 전 해인 2007년 GDP 수준을 100으로 볼 때 2017년 이탈리아 GDP는 93으로 약 7%가 줄어들었다. 이는 유럽 전체나 유럽의 주요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불가리.
불가리.

같은 기간 동안 EU 전체는 3.2%,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9.4%와 5.2% 성장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 또는 '20년'은 비단 일본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 유럽 최악 수준이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규모는 2010년 GDP 대비 –4.2%에서 –3%대로, 그리고 다시 –2.5% 수준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언뜻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이전 재정적자 규모까지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GDP 성장률
이탈리아의 GDP 성장률

1990년대 재정적자 규모는 GDP 대비 –10%를 넘나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국가부채 문제도 크다. 글로벌 위기가 있었던 2008년 106.1%였던 국가부채는 10년 후인 2018년 134.8%로 증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문제로 인한 공공 의료인력 및 시설 미비는 최근 코로나 위기에도 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 나라 국민이 갖는 부(富)의 척도가 되는 1인당 GDP에서도 이탈리아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2008년 4만 달러를 넘어 최고점을 찍은 이탈리아의 1인당 GDP는 이후 수 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는다.

1인당 GDP
1인당 GDP

2009년 3만7000달러, 2010년 3만6000달러에서 2015년에는 3만180달러로 간신히 3만 달러 대를 유지했다. 2018년에는 다시 3만4300달러까지 올랐지만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시 큰 폭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21세기 들어 10%를 넘나드는 실업률 또한 이탈리아의 고통을 잘 드러내 주는 지표다.

특정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기원을 따지게 된다. 이탈리아는 언제부터 또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이탈리아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1936년 생으로 2020년 현재 84세의 고령이다. 그는 1994년 5월부터 다음해인 1995년 1월까지, 2001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그리고 2008년 5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모두 세 차례 총리를 지낸 이탈리아 최대 거물 정치인이다. 당연히 그의 손에 이탈리아의 명운이 달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어느 정도의 정치력만 발휘했어도 지금의 이탈리아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

하지만 그는 그를 지지하던 국민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많은 이들은 그가 애당초 나라를 이끌어 갈 재목이 못 됐다고 평가한다. 정치나 경제개혁은 일체 없었고 언론 장악과 그를 통한 이미지 전략에서만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막장 언행이 그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겼다. 탈세에 마약에 미성년 성 매매, 불법도청, 정치인 매수 등 그에 대한 죄목은 그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다. 2005년 여성 대통령과의 회담 후 그는 "외교무대에서 플레이보이 스킬을 썼다"고 자랑했는가 하면 2013년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 추모식장에서 무솔리니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했다. 2019년 3월에는 그와의 마약ㆍ섹스파티를 증언했던 여성 모델이 독살됐고 그 배후인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잡지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2011년 6월 11일자 커버스토리로 그를 다루며 '한 나라를 송두리째 말아먹은 사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잡지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2011년 6월 11일자). 기사 제목은 ‘한 나라를 송두리째 말아먹은 사나이’였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잡지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2011년 6월 11일자). 기사 제목은 '한 나라를 송두리째 말아먹은 사나이'였다.

영화계는 이 같은 문제의 인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다수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2001년 영화 <아들의 방>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료상을 수상했던 난니 모레티(Nanni Moretti) 감독은 그에 대한 영화를 두 편이나 내놨다.

1997년 작 <4월>과 2006년 작 <악어>가 그것이다. 두 편 모두에서 베를루스코니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는 악인 중 악인이다. 스테파노 솔리마(Stefano Sollima) 감독의 영화 <수브라게이트>도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영화다.

모레티 감독의 영화들이 베를루스코니를 대놓고 희화화한 반면 <수브라게이트>는 그에 대한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관객은 이 영화에서 마약을 하며 10대 소녀와 놀아나는 남자 주인공이 누구인지 안다.

생존 인물에 대한 영화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는 왜 수편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일까? 부정과 부패, 권위주의와 탐욕으로 똘똘 뭉친 세속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캐릭터를 첫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캐릭터는 감독에게 한 번쯤 다뤄보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평은 최악 수준이다. 자유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영화계 인사로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인물을 역사적으로 희화화함으로써 권위와 위선을 난자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그린 여러 편의 영화 중 이 영화 <그때 그들>은 압권이다. 전작 <그레이트 뷰티>와 <유스>를 통해 탐미주의 감독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파울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2014년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한 노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그레이트 뷰티>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 세계적인 명성을 알렸다. <그레이트 뷰티>와 <유스> 그리고 이 영화 <그때 그들>은 소렌티노 감독이 만든 '인생 3부작' 또는 '욕망 3부작'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베를루스코니 뿐 아니라 이탈리아 상류층의 타락한 정치와 개인의 삶을 맛볼 수 있다. 화려한 컬러와 음악으로 토핑된 추악한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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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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