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확씨 추천설 등 번져 … 쓰루 자신은 "정일권 총리가 밀었을 것'확신
6월3일 쓰루의 등장은 부총리만 교체한 족집게 단독 인사였다.
그런지라 해석이 분분했다. ‘박충훈 씨의 사표가 갑작스러워 쓰루로 부총리 자리만 채웠다. 여타 경제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는 준비되는 대로 실시할 것이다’, ‘후속 장관 인사가 있어야 하지만, 쓰루가 팀을 구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느라 당장의 여타 장관 인사를 안 했다’ 등등 . 그 후 진행된 일로 봐서는 박 부총리의 사임으로 새 경제팀을 만들 필요가 있긴 한데, 새 부총리가 자기 나름의 경제팀을 꾸릴 여유가 없었다는 분석이 가장 일리가 있다. 이후 10월 개각을 통해 그가 부담스러워하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인물들은 대부분 경제팀에서 물러나고, 상대적으로 젊고 박진감 넘치는 인물들이 들어왔다. 새 쓰루 팀은 대부분 그의 의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부총리 취임에 관해 여러 설이 있다. 박통이 늘 그를 부총릿감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박충훈 부총리가 사임해 그가 부총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부총리 결원이 생겼을 때 정일권 국무총리가 그를 적극 추천하였고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들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쓰루(김 부총리)가 명석하고 소신이 뚜렷하며 추진력이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있던 박통도 그의 모난 점이 마음 한구석의 걱정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가 부총리로서 경제팀을 ‘조화롭게’ 끌고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이 비서실장에게 “그 사람을 부총리 시켜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청와대에 들어와 수양을 많이 쌓아 달라졌다”는 말로 박통을 안심시켰다는 야담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쓰루 자신은 재무부 장관 천거 때부터 자기를 알아주고 밀어준 인물은 정일권 총리라고 믿고 있었다.
신현확 씨가 자기 대신 쓰루를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다. 신 씨가 그때는 쌍용양회 사장을 하고 있었는데, 원래 자신이 부총리로 내정되고 그 사실까지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쌍용양회의 오너이자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었던 김성곤 씨가 자기 회사의 경영 쇄신에 신 씨가 꼭 필요하다고 하여 그 인사가 물림을 당했다는 것이다.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이 내정 철회 소식을 전하고는 신 씨에게 “내일 조각 발표를 해야 한다. 누가 좋겠느냐”고 묻기에 쓰루를 추천하였는데, 다음 날 보니 자기가 추천한 대로 그가 부총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현확 씨 추천설은 다른 회고에도 가끔 나온다. 그러나 그런 전언들대로라면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6월 2일 부총리 교체 발표가 있기 며칠 전에 쓰루의 부총리 영전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박통으로부터 부총리 영전에 관해 귀띔을 받은 것은 5월 말이었고, 적어도 부총리 임명 발표가 나기 하루 이상 전에 대통령에게 그 직의 수락 의사를 밝혔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둘째, 김정렴 비서실장이 신 씨에게 그 대신 임명할 부총릿감을 물었다는 것도 사실이기 힘들다. 쓰루가 부총리로 임명되었던 1969년 6월에 김정렴 씨는 개각 관리를 하는 비서실장이 아니라 상공부 장관이었다. 김정렴 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것은 쓰루가 부총리가 된 넉 달 반 뒤인 10월 22일 개각 때였다.
셋째, 당시 인사는 부총리를 박충훈 씨로부터 쓰루로 교체하는 ‘각료 1인 교체’였고, 복수 각료가 교체되는 ‘개각’은 아니었다. 따라서 개각을 발표해야 되는데, 부총리로 임명할 사람이 없어서 개각을 못 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그가, 박통의 귀를 붙잡고 있는 많은 윗사람들 사이에서 ‘부총릿감’으로 여겨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