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계 이민자 출신… 유대인 드라마 학교에 우연히 들어가 연기에 눈 떠
수많은 세계적인 명배우를 만든 조련사.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 말론 브랜도, 더스틴 호프만, 제임스 딘,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폴 뉴먼 그리고 마릴린 먼로 등미국 할리우드를 빛낸 스타 들은 이름 모를 영화학교의 동문이다. 맨해튼 39번가 부근에 있었던 작은 영화학교. 액터스 스튜디오. 리 스트라스버그와 동료 몇 명이 함께 만든 영화배우 학원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영화학원장으로서 이토록 많은 스타를 배출했을까. 그것도 대스타들 말이다.
유명한 학원이라해도 한 두 명을 배출할까 말까 한데 수 십 명의 세계적인 영화배우를 탄생시켰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쓴 '뉴욕을 만든 사람들'의 공통점이 그에게서도 나타난다.
일종의 공식처럼 말이다. 수선 유대인이다. 가난과 열등감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뉴욕의 어두운 곳에서 태어났다. 브롱스, 브루클린 등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우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들은 하나같이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스트라스버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하지만 엄격하게 이야기 하면 그가 태어날 당시는 오스트리아 땅이다.1901년의 일이다. 부모님은 모두 유대인이다. 아버지는 의류공장 직조공였다.
신세계로의 탈출이 가장으로서의 꿈과 희망였다. 미국으로 건너갈 돈이 모자랐다. 가족을 하나 둘씩 단계별로 이주해야 했다. 큰 아들과 딸을 먼저 뉴욕으로 보냈다. 그 다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시고 1909년 뉴욕으로 출발한다. 그 해에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가족모두가 재회한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 그 곳에서 자랐다.
지금도 로어 이스트 지역은 맨해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중 하나다. 그 당시엔 더말 할 나위가 없을 정도의 초라한 동네였다. 조그만 방안에 수 십 명이 함께 기거하면서 살았다. 식수와 화장실 문제는 물어보나마나다. 지금 생각하면 난민 수준 생활이었다.
그는 바로 위 형을 좋아했고, 형을 따라, 독서를 열심히 했다. 학교 성적도 훌륭했다. 성적이 올 A 였다. 그렇게 좋아했던 형이 1918년 불어 닥친 유행성 독감으로 사망한다. 아마도 요즘 창궐하는 코로나19와 비슷한 바이러스였을 텐데 속절없이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그는 학교도 그만두고 정신적인 방황을 한다.
보다 못한 친척이 그를 일터로 데리고 간다. 가발공장, 서점 등에서 보조원으로 일을 했고 유대인 학교 부설 드라마 학원에 우연히 들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영화 인생은 20세기의 세계 영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영화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 되는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흥미 반 강요 반으로 시작한 그의 연기 인생은 주변 사람들로 부터 재능과 솜씨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던 와중에 러시아 연출가인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모스크바 예술공연단 연극을 보면서 그는 마음을 굳힌다. 새로운 연기 기술과 시스템을 뉴욕 연기 바닥에 정착시키자. 그 길이 내가 갈 갈이라고 마음먹는다.
그는 키가 작았다. 165cm. 얼굴도 핸섬하지 않았다. 연기력으로 아무리 뛰어난다 해도 배우로서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바로 연기 학원을 만들어 새로운 예술이론으로 배우를 만드는 일에 투신하자고 결심한다. 그러한 노력과 각오로 몇 년간의 연극무대 주변에서 클럽까지 만들었다. 연기 트레이닝 실력 소문이 금새 퍼졌다. 그 이후 동료들과 함께 전설적인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자신이 교장직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