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주식으로 대거 뭉칫돈 이동…4년새 도쿄땅값 4배 폭등
대출 조이자 ' 잃어버린 20년'촉발?…우리 부동산은 연착륙 할까

2020년 1월이 다 가는 시점임에도 국내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여전히 지난 1월 14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다. 그날 문 대통령은 "급격한 가격상승이 있었던 강남권은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고 '부동산거래 허가제' 등 그 후속 대책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올해 4월에는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2022년 3월에는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부동산 버블이 커지든 꺼지든 문 대통령이 내놓은 화두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했던 '강남권 땅값 원상회복' 얘기는 거의 '국민과의 약속'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정치권에 연이어 '선거'라는 큰 판이 서는 만큼 청와대와 정부는 이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 취임 후 3년 가까운 임기 동안 강남 집값은 60~100%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원상회복'이라는 약속을 지키려면 강남 집값은, 심하면 반 토막 가까이 나야 한다. '토지거래허가제' 등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강력한 제도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칫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일본의 버블 붕괴와 그로 인한 '잃어버린 20년' 또는 30년의 예를 든다. 갑작스럽고 강력한 규제는 시장에 생긴 버블을 터뜨리며 경제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1990년 3월 일본의 전격적인 부동산 대출 규제가 일본 부동산의 거품을 터뜨렸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 같은 우려를 하는 분들께 이 영화를 권한다. 이 영화 역시 '강력한 규제가 버블을 터뜨리고 버블이 터지면 경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영화는 2007년 일본이 겪던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1990년 3월의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에서 찾고 일본 재무성이 그 규제를 막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90년 3월의 규제정책을 막아 2007년의 일본경제가, 이전과는 달리, 크게 발전했다고 가정한다. 이것은 영화로 만든 일종의 '경제 가설'이다. 이 '가설'은 검증을 필요로 한다. 과연 이 가설은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일본 버블의 형성과정과 1990년의 규제정책, 그리고 그 결과를 살펴보며 이 '가설'을 검증해 보자.
1980년대 후반 일본을 덮친 거품경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ㆍ전문가들이 거의 일치된 의견을 제시한다.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플라자합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시리즈 세 번째 글에서 이미 얘기했던 것이니 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플라자합의는, 간단히 말해, 주요 선진국들, 특히 일본이 외환시장에 달러를 내놔 달러 값을 내리자는 내용이다. 1980년대 들어 심각해진 일본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미국의 고육지책이었다. 그 결과 엔화 값은 급격하게 상승할 테고 그 결과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출은 줄고 내수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 정부로서는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시중에 돈을 돌게 하는 것이 주요 정책 중 하나다. 금리를 낮추는 것은 이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플라자합의 이후 당연히 일본도 금리를 인하하는 정책을 펼쳤다. 플라자합의 4개월 뒤인 1986년 1월 시작된 금리인하 행진은 1987년 2월까지 모두 5차례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2.5%라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낮아졌다. 일본은행 설립 후 최저 금리였다. 이 정책은 일단 일본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세상에 돈이 돌았고 일본 내수 경제가 살아났다.
또한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플라자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이었던 환율은 합의 직후 220엔 대로 떨어지더니 1987년 5월에는 140엔대로, 1990년대에는 100엔대로 떨어졌다. 엔-달러 환율이 반 토막이 나자 일본 경제의 젖줄인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했다. 이 예상도 현실로 드러났다. 합의 전후 250억 달러 규모였던 일본의 무역수지 규모는 1987년 16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후 약간의 등락은 있었지만 같은 수준을 유지했던 것이다.

자, 이제 '저금리'와 '엔고'라는 두 가지 현상을 합해 생각해 보자. 금리가 낮아졌으니 시중에 돈이 돈다. 하지만 기업은 엔화 가치가 높아 밖에서 물건 팔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1만 엔 하던 물건을 2만 엔에 팔아야 하니 누가 사겠는가. 도저히 안 돼서 값을 깎는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엔화 가치가 높아졌으니 외국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쉬워졌다. 예전에는 1만 엔 줘야 샀던 물건이 이제 5000엔이 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물건을 팔기 보다는 사기에 바빴고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물건을 사다 보니 경기가 살아났고 흥청망청 돈을 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당시 수없이 생겨난 나이트클럽은 지금까지 이 '흥청망청 경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동산의 가격 상승은 필연이었다. 금리를 낮춘 정부는 대출까지 완화해 줬고 정부 정책에 호응한다며 은행도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줬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고 이를 본 다른 사람도 눈에 불을 켜고 집을 사 또 값이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개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기업도 이 부동산 인수 대열에 적극 뛰어들었다. 어렵게 물건을 파느니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훨씬 큰 수익이 났던 것이다. 은행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앉아서 이자 받아먹고 담보로 잡은 집값이 오르니 돈을 떼일 염려도 없었다. 1986-90년 4년 사이 일본 주요 도시 집값이 4배 가까이 올랐다니 2000만 엔 집이 4년 뒤에 8000만 엔이 된 셈이다. 이처럼 땅값이 오르자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우수개소리까지 나왔다.
주가는 더 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면 부동산보다 주식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주식에 비해 부동산은 덩치도 크고 환금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고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일본정부가 기업의 편법 투자까지 용인했다. 1980년대 후반 주가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오르기만 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 8000을 밑돌던 니케이지수는 1990년에는 4만에 근접하며 거의 5배 상승했다. 기업 가치도 놀랄 만큼 뛰었다. 1988년 시가총액 순위 세계 50대 기업 중 33개가 일본기업으로 비중 66%에 이르렀다. 특히 시가총액 1위 기업 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에 비해 무려 4배나 많았다.
영화는 앞서 말했던 대로 이 버블의 붕괴를 1990년 3월의 대출규제 정책에서 찾는다. 2007년 암울한 경제를 이겨내기 위해 재무성은 세탁기로 만들어진 타임머신을 만들어 주인공 모녀를 1990년 3월로 보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대출규제 정책을 무산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2007년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발전한 일본을 목도하게 된다.
필자는 영화 <버블로 고!~>를 만화가 출신의 감독이 만든, 만화 같은 영화로 봤다. 그리고 그 특성 중 하나로 영화의 '단순성'을 지적했다. 영화는 진짜 단순하다. 버블 붕괴의 원인을 1990년 3월의 정부 정책 하나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일본의 버블 붕괴는 없었을 테고 이후 일본 경제는 엄청난 발전을 향후 했을 것으로 그린다.
만화의 특성 중 또 다른 하나는 '과장성'일 것이다. 과장 없는 만화는 없다. '만화 같은 영화'의 특성 중 또 다른 하나도 이 '과장성'에서 찾을 수 있다. 카메라워크나 미장센에서도 심한 '과장성'을 볼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더 중시하는 '만화의 과장성'은 스토리에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음모론'에 기초한다. 일본 재무성의 세리자와 국장(이부 마사토 분)이 외국인 자본가와 결탁해 일본경제를 망쳐 국부를 싼값에 외국자본에 넘기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논리다. 그러니 정책의 발표를 막는 것은 단순히 경제의 붕괴를 막는 차원이 아니다. 국부를 외국인에게 넘기려는 음모를 막는 애국 행위이기도 하다. 최국희 감독이 2018년 개봉해 화제가 됐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보여준 음모론과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단순성'과 '과장성'은 말이 안 된다. 일본 정부가 버블을 막기 위해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대출총량규제' 발표가 있기 1년 전이었다. 1989년 5월 일본은행이 공정금리를 2.5%에서 3.25%로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해 10월과 12월, 그리고 '대출총량규제'를 시작한 1990년 3월과 8월에도 금리를 올려 공정금리는 6%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많은 학자들이 1980년대 버블 경제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공통된 견해를 보인다. 그리고 버블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실패'라고 공통된 견해를 보인다. 하지만 '실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뭇 다르다. 논리적으로 보면 정부 정책은 3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버블 생성 단계, 버블 확장 단계, 그리고 버블 수축 단계다. 각 단계마다 일본 정부의 실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일본 정부 실책의 핵심을 버블 생성 단계에서 찾는다. 금리를 너무 빨리 내리고 대출 규제를 완화시켜 버블을 지나치게 급속하게 키웠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확장단계에서의 실책을 지적한다. 초기 생성이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버블 확장은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이들은 1989~90년 사이에 있었던 금리인상과 대출규제 정책이 1년 정도 빨랐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버블 수축 단계를 꼽는 이들도 많다. 버블 수축 정책을 너무 강력하게 그리고 너무 급하게 펼쳤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경제 연착륙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인데,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추락했고 이 충격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됐다고 말한다.
이 세 번째 주장이 영화 <버블로 고!~>와 상통한다. 그럼에도 '대출총량규제' 정책을 막기만 한다면 일본 경제는 다시 고공행진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그야말로 만화처럼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1990년 3월 '대출총량규제' 정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버블이 더 커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없었다 해도 이미 버블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던 상황이었다. 어쩌면 '대출총량규제'를 하지 않았다 해도 버블은 순식간에 꺼졌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대출총량규제' 정책은 결정적인 변수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 대해 또 하나 지적할 것이 있다. '대출총량규제' 정책의 대명사가 된 츠치다 마사아키(土田正顕) 은행국장에 대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세리자와 국장'으로 명명된 그를 '외국자본에게 국부를 팔아넘기기 위해 규제 정책을 펼친 악당'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기자회견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주제다. 하지만 큰일 날 이야기일 수 있다. 츠치다 국장은 2004년에 고인이 됐다. 그리고 기자 회견을 한 것도 아니요, 은행에 규제 통지문을 일괄적으로 발송했을 뿐이다. 또한 그 같은 주요 정책을 국장 개인이 했을 수도 없다. 영화는 이로써 츠치다 국장 개인의 명예를 지나치게 훼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나저나 한국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강력한 규제로 한꺼번에 버블이 꺼질까? 아니면 조금씩 조금씩 꺼지며 연착륙을 하게 될까? 뭐가 됐던 2019년 연말에 강력한 규제정책을 불러 온 최근 수년 동안의 부동산 버블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아 보인다. 출산율이 1에 미치지 않는 상황이다. 젊은이들이 시집, 장가가서 아이 낳는 것에 나라의 명운이 달려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악중악(惡中惡)'이다. 집살 돈이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게다가 이 버블의 원인이 수요-공급이나 금리 등 거시 경제에서만 찾아지는 게 아니라는 인식도 있다. 적지 않은 버블이 투기꾼들의 장난질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다단계식 기획부동산 사기나 허위거래 신고, 가격담합 등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수많은 불법ㆍ탈법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대출 규제를 넘어 나라의 명운을 걸고 일벌백계해야 한다. 도를 지나친 저출산ㆍ고령화나 인구감소는 부동산 버블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나라의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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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