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정주영 회장이 소를 판 돈을 몰래 훔쳐 가출한 것 처럼 신격호(96) 롯데 창업회장 역시 가출했다. 그를 아꼈던 4촌 형님이 마련해준 돈을 갖고 일본으로 가족 몰래 도망쳤다. 빈농의 장남으로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늘 신학문에 갈증을 느꼈던 그는 열 아홉에 83엔을 쥐고 일본행 연락선을 탔다. 83엔은 당시 면서기의 두달 월급이어서 적지 않은 돈이었다.
동네에서 머리가 명석하고 야무지게 생겼다면서 ‘농사보다는 공부를 시켜라’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신 회장은 무작정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1941년 일이다. 관부연락선이 시모노세키항에 닻을 내리자 마자 그는 일본 형사에게 붙잡여 모진 매를 맞았다. 행색도 그러하거니와 ‘공부하러 왔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공산당에 가입하러 왔냐’라고 되물으면서 밀실로 끌어가 모진 매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와세다고등공업학교 응용화학과에 재학중이던 그에게 ‘은인’이 나타났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하나미쓰(花光)라는 일본인이 그에게 창업자금을 대준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신회장을 써봤는데 마음에 들어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가 세운 공장은 미군 폭격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기계를 깎을 때마다 쓰이는 기름(커팅오일)제조에 다시 나섰지만 재미를 못봤다. 하지만 그 기름제조법을 활용해 세탁비누와 머리 포마드 등을 생산해 히트를 치면서 신 회장은 드디어 손에 돈을 쥐게 된다. 사업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 중에 뚝 떼서 그는 손바닥 만한 금덩이 두 개를 마련한다. 인편에 금 덩이를 부모님께 전달했고 그 금덩이를 손에 쥔 부모님은 ‘아들이 피눈물 나게 번 돈’이라며 밤새 울었다고 한다. 가출 6년만의 일이다.
이후 껌과 과자공장을 운영하면서 나온 제품에 상표를 붙여야 했는데 어느날 하숙집에서 읽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속 여자 주인공 샤 롯데에 영감을 얻어 ’롯데‘란 상표를 붙였다고 한다. 당시 신 회장은 독서에 심취한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베르테르의 복장은 유럽 젊은이들사이에서 신드롬 처럼 번졌고 샤 롯데에게 결별 선언을 들은 베르테르처럼 실연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1947년 무렵이다. 그러니까 ’롯데‘브랜드가 잉태된지는 70년이 넘었다.
아무튼 신회장은 '사랑과 연애 그리고 이별'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브랜드로 롯데를 내세웠고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드디어 골목 귀퉁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작은회사에서 회사다운 회사로 거듭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