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1 20:27 (화)
뉴욕을 만든 사람들㉙ 앨런 '저성장 우려'
뉴욕을 만든 사람들㉙ 앨런 '저성장 우려'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20.01.10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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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나 여성으론 첫 美연준 장에 올라
"저금리 등 통화 정책만으론 부족하고 재정 정책으로 저성장 돌파해야"
트럼프와 각을 세우면서도 '통화정책 독립성'유지한 채 임기도 다채워

재닛 옐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ㆍ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그녀는 최근 침체 기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활성화 차원에서 ‘일본형 장기불황(재패니피케이션)’의 해법을 내놓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에도 일제히 저성장· 저물가를 벗어나 못하자 ‘일본형 장기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통화정책만으론 불충분하다. 재정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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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를 이겨내기 위해선 통화정책만으론 불충분하다. 재정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강조했다. 사진=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녀는 ‘미국 경제가 구조적인 장기 침체 (secular stagnation)에 빠져 들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생산성 저하와 고령화로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처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써야 할 상황이 언젠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조적 장기침체는 총수요와 투자 부족, 만성적 저성장으로 저물가가 고착화된 상태로 일본형 장기불황과 유사한 것이라 본 것이다.

옐런 전 의장은 “물가가 중앙은행의 목표를 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무를 위험이 있고 그렇게 되면 통화정책을 펴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경고했다. 불황이 길어지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부양책을 써도 정책이 먹혀들지 않으며 디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불황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통화정책이 ‘유일한 정책수단’이 돼선 안된다”며 “미국은 불황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인하할 여력이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면 강한 뚝심을 갖고 있는 금융경제전문가, 재닛 옐런은 누구인가.

그는 뉴욕이 낳은 여성리더다. 앨런은 194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트럼프와 같은 해 뉴욕에서 태어났고, 서로 멀지 않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국의 경제학자로 전형적인 학구파였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교수였다.

앨런은  유대인의 피를 갖고 있다. 미국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중 한 사람이다. 요즘은 유대인 아닌 사람이 거물로  등장할 경우가 오히려 뉴스거리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과의사다. 부모들은 폴란드에서 이민 왔다. 그녀는 브루클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공부를 잘해 브라운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20여명 중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교수들로부터 받았다. 모두 남자였고, 여자는 앨런 혼자였다.

옐런은 경제이론을 일상생활에 연결시키는 분야에서의 탁월한 평판을 얻었다. 소위 인플레이션과 실업대책에 일가견이 있었다. 1994년까지 비교적 평범하게 교수로서 지내다가 빌 클린턴 정부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으면서 정치 무대에 데뷔한다.

앨런의 남편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 박사로서 조지타운대 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버클리대학 명예교수이다. 부부가 경제학 교수였다.

앨런은 2010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 맡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그래서 벤 버냉키 후임으로  2014년 미국 상원에 의해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임명됐다. 여자의 벽 '유리 천장'을 깨버린 것이다. 연방준비이사회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며, 부의장에서 의장에 오른 것도 처음이다.

앨런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비둘기파로서 소문나 있다. 케인즈 경제학을 주창하면서 연방금리의 인상을 통한 인플레이션 정책보다는 실업대책에 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경제학자이다. 경기 순환국면상 경기의 안정성에 의한 금리 정책을 옹호하는 케인즈식 경제정책주의자다. 격렬한 논쟁을 하면서도 온화하고 품위가 있다는 평판을 얻었다. 어려운 일도 소리없이 소화한다.

하지만 시장을 보는 눈은 매와 같다. 월스트리트 분석 결과 교수인 앨런의 경제전망 발언 38건 중에 36건이나 적중해, 경제금융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미국경제는 물론 전세계 경제를 무리없이 끌고 가야 하는 그녀의 역할은 새로운 대통령 트럼프를 맞이하여 쉽지 않은 대립과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4년전 미국의 금리인상을 놓고 트럼프당선자와 입씨름을 했다. 이 과정에 비둘파인 앨런이 먼저 금리 인상을 서두르자 모두 놀랐다. 그렇치 않아도 미국이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때였다.

보통 매파가 해야 할 정책인데 온건파 옐런이 금리를 올렸다는 점은 모두의 허를 찌른 것이다. 모양새는 트럼프의 금리인상 주장에 꼬리를 내려 항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전혀 아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 정작 금리인상을 부르짖던 트럼프가 시쿤둥한 표정을 지은 점을 보면 알수 있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옐런를 곱게 보지 않았다. 경제를 보는 노선이 달랐다. 옐런은 오히려 힐러리 클린턴과 가까웠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전 인터뷰에서 "옐런 의장은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단정했다. "회복되는 미국 경제에 맞춰 이미 금리를 올렸어야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을 돕고자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당선되면 옐런 의장을 재지명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옐런 의장은 의회 발언을 통해 '트럼프의 당선 등 정치적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통화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대선 당선된 이후 그들은 관계는 냉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들이 예상한 것처럼 앨런은 자신의 주장을 연거푸 쏟아내며 대립각을 세웠다. '기준금리 인상’과 ‘연준 독립성’이라는 화두로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임기가 끝나기 전 물러날 뜻이 전혀 없으며,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위험하다는 신호를 트럼프에 지속적으로 보냈다. 한 술 더 떠 옐런은 자신의 거취와 통화정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연준 의장으로서 임기는 상원에 의해 4년으로 확정된 사안이며,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의장으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결국 트럼프의 강한 협박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중도에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2014년 2월부터 시작된 4년 임기인 2018년 1월까지 제15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임기를 마쳤다. 현재 브루킹스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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