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00 (토)
뉴욕을 만든사람들㉘' 피아노 맨' 빌리 조엘
뉴욕을 만든사람들㉘' 피아노 맨' 빌리 조엘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19.12.31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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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첫 앨범 보기좋게 실패… 절망해 광택제 마셔 자살 기도
늦은 밤 술집서 피아노 치며 노 래부른 '어둠의 가수'로 생계이어
'피아노맨' 하나로 단번에 빌보드 석권… 그래미상 여섯차례 수상

23번의 그래미상 후보에 올라 , 6번의 그래미상 수상.  1970~1990년 미국의 '톱 40' 힛트 노래중 33개 곡 랭크. 그 모든 노래를 스스로 만든 가수. 1억5000만장 음반 판매량 보유. 빌리 조엘의 기록이다. 음악계에서 뉴욕을 빛낸 스타라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작곡에 있어서 음의 원천은 피아노다. 다른 악기보다도 다양한 음과 폭을 갖고 있기에 곡을 만들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한결 같이 피아노에 능수능란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피아노 맨'의 소질이 있었다. 사진=플릭커.
작곡에 있어서 음의 원천은 피아노다. 다른 악기보다도 다양한 음과 폭을 갖고 있기에 곡을 만들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한결 같이 피아노에 능수능란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피아노 맨'의 소질이 있었다. 사진=플릭커.

그 역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열등감이 심했으며 때로는 불운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걸 극복했다.

그는 1949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이후 바로 강 건너 롱 아일랜드 힉스빌이란 동네로 이사 해 청소년기를 보낸다. 독일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유대인 핏줄이었다. 

이버지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어린 그도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친해진다.

나아가 4살 부터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냥 쳐보는 차원이 아니다. 귀가하면 부모님들이 더 가르쳤다. 어떤 날은 손목이 아플 정도로 연습을 했다. 억지로 시킨다고 그렇게 되질 않는다. 어린 자신도 이미 피아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살도 되기 전에 피아노 실력이 일정한 경지에 올랐다. 그런데 재즈풍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 아버지한데 혼이 났다. '그게 무슨 음악이냐고 ...' 피아노를 정통으로 배운 셈이다.

작곡에 있어서 음의 원천은 피아노다. 다른 악기보다도 다양한 음과 폭을 갖고 있기에 곡을 만들기가 수월하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한결 같이 피아노에 능수능란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피아노 맨'의 소질이 있었다.

빌리 조엘은 세 차례에 거쳐 199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그리고 2006년 롱 아일랜드 뮤직 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2001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서 ‘조니 머서 어워드’를 받았고, 2013년에는 케네디 센터 명예 훈장을 받았다. 전당이란 전당에는 들어갔고, 훈장이란 훈장 또한 누구에 뒤지지 않게 받아냈다.

중학교 댄스파티에 우연찮게 무대에 올라 엘비스 노래로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기수의 길을 걷게 된다. 또래 남녀 학생들로 부터 ‘잘한다’ 소리에 어깨가 우쭐해서 시작한 노래와 자신감으로 14세 때부터 록 밴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학교 행사나 인근 이벤트에 음악행사에 참여하면서 공부는 뒷전이었다.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못 받았다. 나중에 명예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지만 말이다.

1971년부터는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어렵게 만든 정식 앨범 발표도 한다. 그러나 인기를 못 끌자 실망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어두운 시간은 10년이 흘러야 풀린다. 더구나 자신은 키도 작고, 외모도 그렇게 특징이 없는데다가 약간 흑인 혼혈의 피가 섞였다는 열등감 마저 커져 간다. 그런 과정에 참다못해 집에서 음독 자살까지 시도한다.

다행히 살아났다. 자살하기 위해 집 지하실에 있는 가구 광택제를 마신 것이다. 나중에 옆에 표백제도 있었는데 왜 하필 가구 광택제를 마셨냐는 질문에 그는 '가구 광택제가 마시기 수월한 것 같아서'라고 나중에 밝혀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결국 그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음악이었고 피아노였다. 성년의 나이에 부모에게 지원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결국 술집 피아노가수였다. 궁핍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밥벌이 차원에서 술집이나 바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 자주 불렀던 노래가 바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피아노 맨'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늦은 밤의 술 집 고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노래를 불렀다. 이탈리아 출신이 들어오면 '대부'의 노래를, 아일랜드 사람들이 술집에 들어오면 '대니 보이'를 불러준다. 세상풍파에 지친 단골 고객에게 끈적거리는 재즈 풍의 노래로 향수의 분위기를 진하게 드리워준다. 그러면 그의 피아노 옆 돈 통에 돈이 수북이 쌓인다. 그렇게 인기와 소문이 점차 퍼져나간다.

그의 혼이 담긴 노래와 아픔과 한을. 고객들은 금새 알아차린다. 생활을 위해 노래를 부르지만 결국 그 자신의 지나온 과정을 노래 속에 담겨 나오는 가락들 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려진 그의 노래와 실력은 1973년 싱글 정식 앨범을 내는 기회가 온다. 그게 <Piano Man〉이고 바로 빌보드 상위에 랭크 된다. 가사중에 "존은 바에서  내친구인데요. 음료도 공짜로 주고 손님의 담뱃불도 잘 붙인다"라는 내용이 그가 술집을 전전하던 가수임을 고백한 것이다. 한번 팬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의 노래는 꾸준히 전파를 탄다. 그가 성공하는 주요한 원인은 당연히 그의 자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인생에서 맛본 쓴 맛을 자기 속 마음 속으로부터 끄집어 낸 점에서 여타 가수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다.

하나의 노래에 대한 완전한 곡 해석과 완벽한 감정표현이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읽히기 된 점이다. 빌리 조엘은 전 세계적으로 1억5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6번째로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가수이다.

대략적인 통계로 보면, 엘비스, 비틀즈, 아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제이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들모두 모두 1억장에서 2억장 사이다. 빌리 조엘은 1993년 발매한 "River of Dreams"을 끝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순회 콘서트를 하면서 수많은 솔로 곡들을 부르며 왕성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독실한 유대인 집안이지만 그는 유대교를 충실하게 따르지 않았다. 학교공부도 싫어서 음악한 사람이니 엄격한 유대교 교리를 따랐을까. 자기 말대로 그는 정통 유대인인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래도 그의 피에는 수 천년 유대인의 지혜가 녹아있는 유전자를 받았기에 그런 총명함과 영특함이 피아노를 통해서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완벽한 유대인의 파워와 긍지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집은 자신의 고향 뉴욕 이스트 강 건너인 롱아일랜드 힉스빌에서 10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서 가까운 곳, 대서양의 조망이 뛰어난 바다 가운데 섬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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