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5:10 (수)
정주영과 정세영의 독대서 '현대차의 경영 향배' 갈려
정주영과 정세영의 독대서 '현대차의 경영 향배' 갈려
  •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12.26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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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 주는 게 잘못 됐어"
20년전 1999년 '포니 정' 현대산업개발 지분 받고 자동차몫을 넘겨줘
정몽규 회장 아시아나항공 인수… "항공도 모빌리티"자동차 꿈 이어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 주는 게 잘못 됐어?”

1999년 3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정세영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명예회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한마디에 정세영은 32년간 갖은 노력을 다해 키워냈던 현대자동차를 눈물을 삼키며 포기하고 만다. 계속해서 ‘정세영가(家)의 현대자동차’로 키워보고 싶었던 그의 꿈이 대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8~99년 초에 걸쳐 정세영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경영권을 놓고 숨 가쁘게 벌였던 한판 승부에 대해 창업자이자 현대가(家)의 지존이었던 정주영이 최종적으로 아들 몽구 손을 들어준 장면이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를 세우고 키웠던 창업 초기의 3인방. 왼쪽부터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대표,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정세영은 형인 정주영 회장을 도와 현대자동차를 세계 10위권의 회사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형의 종용으로 현대차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현대산업개발을 받아 독립한다. 오른쪽 정주영 회장의 왼편이 정세영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현대자동차가 그룹 내 비즈니스의 10~20%를 차지할 정도의 현대그룹 간판기업으로 커져 버린 게 오히려 정세영에겐 불리한 요소가 됐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이미 연매출 10여 조원에다 세계 10위권의 초대형 자동차 회사로 커 있었다. 이 때문인지 정세영은 기아자동차 인수에도 소극적이었다. 덩치가 더 커지면 자기 손에서 떠날 것을 우려했다는 풀이가 많았다.

인생 끝 무렵에 경영권 승계 문제를 총 정리해야 했던 정주영이 32년간 자동차를 그룹 주력 기업으로 키워놓은 동생 정세영의 공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이 아닌 장자 정몽구에게 간판기업을 넘겨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았다. 이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 됐다. 결국 정세영은 1999년 3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몽구의 현대산업개발 지분과 정세영·정몽규 부자의 현대자동차 지분을 맞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32년 만에 자동차 업계를 떠났다. 정세영가는 자동차가 아닌 건설회사 현대산업개발을 분양 받아 독립하게 됐다. 당시 뒤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정세영은 겉으로는 “장형이 현대산업개발을 넘겨준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라며 정주영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나타내야만 했다.

막상 정주영이 돌아갔을 때 그가 제일 서럽게 울었다고 전해진 걸 보면 장형에 대해 고마움과 섭섭함을 동시에 지녔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주영이 남동생 다섯 중 30년 넘게 자기 휘하에 두며 사업을 함께 한 경우는 정세영이 유일하다. 대부분 일찍 독립해 자신의 사업을 했다.

정세영은 2000년 11월 출간한 자서전(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그는 “32년 만에 (타의에 의해)자동차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못내 서운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오고 4개월 후인 2001년 3월 정주영 회장은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5년 5월 정세영 회장도 타계한다.

주지하다시피 정세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이다. 정주영 회장(1915년생)보다 13살 아래(1928년생)이며 장조카 정몽구(1938년) 회장에 비해선 10살이 많다. 현대자동차의 정세영 밑에서 경영수업까지 받았던 정세영의 외아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1962년생(57세)이다.

정세영은 장형 정주영이 창업하고 축성한 현대그룹 내에서 자동차 사단을 이끌며 이를 세계 10위권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자동차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놓은 그는 한국 자동차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기업인이다.

최초의 국산 독자모델 승용차인 ‘포니’(1300CC급)를 개발·생산해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냈던 그에게 세계 각국 사람들은 ‘포니정’이란 애칭을 붙여주었다. 지금도 이 애칭은 그를 기억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포니 수출은 현대자동차 설립 10년 만인 1976년 6월 에쿠아도르 6대로 출발했다. 그가 재직했던 32년 동안 개발, 시판된 차종만도 20종에 육박한다. 엑셀, 쏘나타, 그랜저, 다이너스티, 아반떼, 에쿠스, 싼타페, 갤로퍼 등등.

학창시절 정치에 뜻을 두고 고려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유학(마이애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까지 다녀온 그를 대견하게 여겼던 정주영은 그를 현대건설 상무(1960년)에 앉혀 사업 동지로 만든다. 이어 정주영은 1967년 12월 그에게 미국 포드와 합작해서 새로 출범한 현대자동차 사장직을 맡긴다. “자동차 사업 한번 제대로 해봐라”는 특명과 함께 내민 정주영의 회심의 카드였다.

정세영은 지금으로부터 꼭 20년전인 1999년 현대그룹 계열인 현대산업개발의 지분을 받고 현대그룹경영세서 물러난다. 그해 정세영은 현대산업개발의 명예회장으로 자신의 외아들인 정몽규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현대사업개발의 회장자리에 오른다. 정몽규 회장의 취임식 장면. 사진= 현대산업개발 홈페이지.
정세영은 지금으로부터 꼭 20년전인 1999년 현대그룹 계열인 현대산업개발의 지분을 받고 현대그룹경영세서 물러난다. 그해 정세영은 현대산업개발의 명예회장으로 자신의 외아들인 정몽규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현대사업개발의 회장자리에 오른다. 정몽규 회장의 취임식 장면. 사진= 현대산업개발 홈페이지.

현대자동차는 1940년 정주영이 자동차 수리 공장인 아도서비스(Art Service)를 인수하고 자동차정비업을 시작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사업가 정주영의 원래 특기는 건설이 아니라 자동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주영은 언젠가 자동차 사업에서 큰일을 한번 벌여볼 요량이었는데 그런 일을 정세영에게 맡긴 것만 봐도 비록 동생이지만 그를 얼마나 신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주영은 1950년 현대건설을 설립해 자본을 축적하고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67년 마침내 정주영은 현대자동차를 세우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총명하고 국제 감각이 있는 동생 정세영을 앞세워 대망의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 3월 타의로 자동차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정세영은 현대자동차 이임식에서 회사 사가(社歌)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정도로 회사에 애착이 많았다. 30년 넘게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다보니 인맥도 정세영 우군으로 채워졌다. 정주영이 믿고 맡긴 덕에 정세영 독립 사단 비슷했다. 정몽구(MK) 측이 정세영 측과 접전을 벌일 때 이런 구도를 제일 힘들어했다. 탄탄한 우군의 지원에 힘입은 정세영은 한때 주총에서 표 대결까지 벌일 태세였다.

장조카 정몽구가 회장으로 밀고 들어 왔을 땐 울산 공장으로 훌쩍 떠나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는 유학파답게 합리적인 면모가 많았다. 부드러운 스타일에 웃기도 잘했다. 말하는 모습은 장형 정주영과 비슷했지만 이마가 좀 벗겨진 점을 달랐다.

최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해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아버지 정세영을 보필하며 경영수업을 받다 졸지에 현대산업개발로 떠밀렸던 저간의 아팠던 역사를 그는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 정세영과 자신이 못다 펼친 자동차 사업의 꿈을 항공 사업을 통해 풀려 한다는 해석이 그래서 많이 나온다. 같은 모빌리티 사업이란 얘기다. 모쪼록 아들 정몽규 회장이 아버지 정세영의 못다 펼친 꿈을 이뤄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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