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13:10 (수)
'타다 논쟁'계기로돌아본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역사
'타다 논쟁'계기로돌아본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역사
  • 성태원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12.1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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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영역 넘 보지 못하도록 정부가 79년 제정
80년대 들어 대기업 힘 세지면서 중소기업과의 시장경쟁 격화
노무현정부때 경쟁력강화와 수입개방확대조치하면서 폐지돼
MB가 동반성장委구성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되살아나

“대기업인 D社가 중소기업고유업종인 두부제조업에 침투하려 하니 이를 좀 막아주세요.” “중소기업 업종인 PCB(인쇄회로기판) 분야에 굴지의 대기업 S社가 진출을 꾀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1980년대 전반 중소기업계를 취재·보도했던 필자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있는 중소기업의 하소연들이다. 당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진출에 거의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1979부터 2006년까지 27년간 시행된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사업조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가 맡아야 할 업종에 일정한 테두리를 미리 쳐놓고 자본력과 영업력이 앞선 대기업이 거기에 진출하는 것을 사전에 견제해 중소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장치였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1979부터 2006년까지 27년간 시행된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사업조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가 맡아야 할 업종에 일정한 테두리를 미리 쳐놓고 자본력과 영업력이 앞선 대기업이 거기에 진출하는 것을 사전에 견제해 중소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장치였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언론도 약자의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하소연들은 가끔씩 지면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보도됐다. 일단 보도가 되고 나면 대기업들은 난처해하며 여론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많은 경우 “사업 검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진출 계획은 세운 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타다의 공유차량 사업을 놓고 타다측과 정부간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사업영역에 정부가 손을 대는 것이 옳은지를 생각하면서 과거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발자취를 들여다 봤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한국경제호(號)에 같이 올라탄 운명공동체 의식이 그래도 상당히 남아 있었다. 너도 크고 나도 자라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옷을 갈아입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대기업이 정부의 중화학 육성 정책 등에 힘입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사세(社勢)를 키웠다. 따라서 둘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대기업들이 ‘경제 전쟁터’에서 갑의 입지를 강화해 나간 데 비해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힘 약한 을의 처지로 후퇴하게 됐다. 그런 만큼 대기업 견제의식과 피해의식도 높아졌다. 중소기업들은 자구(自救)라는 명분하에 협동조합 등 사업조직을 통해 건수가 생기면 파상적으로 대기업을 공격하곤 했다. ‘경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지 4년만인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보호했다. 사진=동반성장위원회.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지 4년만인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보호했다. 사진=동반성장위원회.

이를 뒷받침한 제도가 바로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꼭 하고 싶은 업종이 있어도 고유업종에 들어 있으면 막상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간혹 그럴 경우에는 말이 많았다.

제도 자체가 양측에 의한 협의와 조정을 기초로 짜여 져 있어 법적 강제력은 없었기 때문에 대기업이 여론 악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긴 했다. 경제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개별적으론 힘이 없었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는 사업체 수의 99%, 종업원 수의 88%를 차지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중소기업 고유업종 같은 제도가 존재할 수 있었다.

1993년 말 기준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싱크대, 손목시계 케이스 등 237개 업종에 이르렀다. 당시 고유업종을 영위하는 중소제조업체 수는 약 1만9천여 개로 전체 중소제조업체의 27% 상당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유업종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2월 마침내 폐지된다. 폐지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고유업종 제도에 안주한 결과 경쟁이 약화돼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과 품질 향상 노력이 등한시돼 마침내 중소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 전체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둘째, 세계무역기구(WTO)가 촉발시킨 글로벌 무역 자유화와 그에 따른 수입 개방 확대 조치로 국내 대기업이 오히려 차별대우를 받게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폐지된 고유업종 제도는 4년 후인 2011년 초(이명박 정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이름을 달고 다시 등장한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대비해 중소기업 사업 영역에 대해 미리 보호 장치를 마련하자”는 비슷한 취지 아래 글로벌 경제 시대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던 셈이다. 적합업종 지원 육성을 위해 국회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 민간협의체 성격을 띤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적합업종을 선정토록 했다.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맡았다. 고유업종 제도가 제조업에 국한된 데 비해 적합업종은 서비스업까지 포함시켰다. 2016년 당시 제조업 56개, 서비스업 18개 등 총 74개 업종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김치, 단무지, 도시락, 김, 순대, 면류, 원두커피, 문구소매업 등이 이름을 올렸다.

동반위는 적합업종에서 대기업이 3년간 확장을 자제토록 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법적 강제력이 없는 민간 자율방식으로 운영돼 간혹 대·중소기업 간 분쟁 사례가 생겨났다. 올해로 7년째 운영된 적합업종 제도가 과연 효율적인지에 대한 논쟁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약자 중소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는 명분이 워낙 강해 국제경쟁력을 앞세워 이를 축소·폐지하는 게 더 낫다는 논리가 대세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 사업체 수는 2017년 말 기준 630만개로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 수는 1599만 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1929만 명)의 82.9%를 점유했다. 이에 따라 종전 중소기업의 위상을 놓고 “9988!”이라 빗대 말했던 것을 “9983!”으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 됐다. 사업체 단위로 파악하던 종전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단위 기준으로 중소기업 기본통계를 새롭게 작성한 결과라고 한다. 어쨌든 시대가 바뀌면서 중소기업의 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의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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