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친중·반중 매체 "범민주가 킹메이커" 이구동성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두면서 홍콩 정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홍콩의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 중 40% 가까운 선거인단을 범민주 진영이 확보하면서 그동안 행정장관 선거에서 들러리 역할을 했던 범민주 진영이 '킹 메이커'로 급부상했다.

중국과 영국은 홍콩 주권 반환 협정에서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2014년 1200명의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를 일방 결정했다. 홍콩에 직접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 중국 본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 조치다.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명은 금융, 유통, 정보기술(IT), 교육, 의료 등 38개에 이르는 직능별로 16∼60명씩 뽑는 직능별 선거인단과 입법회 대표 70명,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 60명, 종교계 대표 60명 등으로 이뤄진다.
이들 선거인단이 모두 친중파로 구성되지 않는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계가 대부분 친중파로 구성되긴 해도 각각 60명인 종교계와 노동계, 사회복지계를 비롯해 법조계, 교육계, 문화계, 의료계 등에서는 범민주 진영을 지지하는 세력이 상당수다.
이에 따라 2016년 말 선출된 약 1200명의 선거인단 중 범민주 진영 인사는 325명을 차지했다. 특히 지난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은 전체 452석 중 400석 가까이 '싹쓸이'하는 압승을 거둬 구의원 몫의 117명 선거인단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구의원 몫의 117명 선거인단 선출은 진영 간 표 대결을 통해 이뤄진다. 구의원 선거에서 이긴 진영이 이를 독식하게 된다.
2015년 구의원 선거에선 친중파 진영이 승리했기 때문에 2016년 행정장관 선거인단 선출 때 이 117명 선거인단을 친중파 진영이 독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범민주 진영이 차지하게 됐다. 범민주 진영이 기존에 확보한 325명에 더해 이 117명을 합치면 442명이다. 행정장관 선거인단의 37%를 범민주 진영이 확보하는 것이다.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는 친중 매체 동방일보를 비롯해 반중 매체인 빈과일보, 홍콩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인 명보 등 홍콩 매체들은 25일 일제히 "범민주 진영이 '造王(조왕)'이 됐다"고 보도했다.
'造王'은 킹메이커라는 뜻이다. 동방일보와 빈과일보는 "범민주 진영이 이제 행정장관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는 표현까지 썼다.
물론 2022년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이뤄질 2021년 선거인단 선출에서 범민주 진영이 확보하는 몫이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구의원 선거 압승이라는 현재 분위기로 볼 때 늘어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친중파 진영이 우려하는 것은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홍콩 재계는 친중국 성향이었는데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명보는 "홍콩 재계와 중국 중앙정부는 이전 선거인단 선출에서도 균열을 보였지만, 이제 홍콩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가를 놓고 다투는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그 갈등은 더 커졌다"고 전했다. 범민주 진영이 재계의 마음을 얻을만한 중도 성향 인물을 내세워 기존 442명에 159명을 더 확보한다면 총 601석으로 행정장관 당선을 노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