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신성일(81)씨가 4일 새벽 1년여의 암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영욕의 60년 족적을 남겼다. ‘외도’를 많이했다. 세 번의 도전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런 권력이 그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기도 했다. 80년대 전후의 주간잡지는 신성일의 뉴스로 가득찼다.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 보니 염문이 없을 수 없었다. 실제로는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배우 108명과 영화를 찍었는데 스캔들이 없다. ‘애인 있습니까?’라고 물어서 ‘없다’고 하면 믿을 사람 어디 있느냐”며 여성 편력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가 말한대로 그는 후회없는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언제나 주목받았다. 지난해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나는 내 뜻대로, 내 주관대로 내가 주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다”며 자신의 일생을 돌아봤다.
그는 추하게 늙기 싫다며 담배와 술을 멀리하며 운동을 열심히 해 8순이 넘은 나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건강미를 과시했다. 또 옷을 잘 입어 젊은이 못지 않은 패션감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인 엄앵란씨와는 오래전부터 ‘별거’를 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우정과 의리는 변하지 않았고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간 폐암 치료비용은 부인이 부담했다. 엄씨는 "내 남편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먹여 살려야 하는 큰아들"이라며 "죽을 때까지 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라며 그의 자존심을 치켜세웠다.
1960~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고인은 데뷔작 '로맨스 빠빠'에서 처음 만난 엄앵란과 1964년 결혼했다.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은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업무가 마비됐다. 요즘 인기 아이돌 가수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2016 엄앵란이 유방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한 집에서 잠시 같이 살았다.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은 고인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다. 그 때만 해도 병색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청바지 차림의 8순 멋쟁이 노인이 한달여 만에 이승을 떠날 줄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