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ㆍ악세사리ㆍ스포츠 구단 인수 등 사업가로서 수완도 발휘
지난해 자산 '10억달러'대열에 올라 … 미국사회 롤모델로 부상
2008년 12세 연하 띠동갑 비욘세와 결혼해 다시 한번 대중들의 각광을 받는다. 가정을 꾸리면서 음반 발표는 뜸해졌지만 가수보다는 사업가의 수완을 발휘한다.
음악으로 성공한 만큼 그는 레코드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음반회사와 가수들간의 ’노예 계약‘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신인 가수로서의 설움과 아픔을 체험했던 그는 그런 음악계의 관행을 깨고자 음반 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곤 형편이 어려운 가수들의 데뷰 무대를 지원한다. 음반제작을 도우면서 미래의 가수들의 길을 열어 준것이다.
나아가 의류사업에도 손을 댄다. 거기다 악세사리, 신발 및 향수 사업분야로 눈을 돌린데 이어 스포츠에이전시 사업으로도 거침없이 사업영역을 넓혔다.
그가 만든 회사들의 연간 매출 7억 달러 규모(지난해 기준)를 넘겼다. 그의 매출이 비즈니스업계에서만 본다면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출신과 음악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이력을 볼때 그 매출액은 결코 적은 것이라 할 수 없다.
브루클린에서 마약을 팔던 소년이 힙합으로 성공한 후 시업가로서도 빛나는 수완을 발휘 한 것이다. 명멸했던 적지 않은 가수들의 말로에 비하면 인생역전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제이 지는 미국사회에서도 훌륭한 롤 모델로 여겨진다.
그는 자기의 힘들었던 과거 시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마약을 팔던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감추지않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는 그러한 아픔과 절박함이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2005년 축구팀인 아스널 FC의 구단을 인수한 적도 있다. 2006년에는 맥주회사 지분도 사들인 적도 있다. 농구팀인 뉴저지 넷츠의 공동 구단주이기도 하다. 최근엔 뉴욕의 호텔경영쪽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손 댄 음반회사는 음반 제작, 판매를 넘어 콘서트 기획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그는 한 분야의 사업구조를 끊임없이 혁신한다. 그는 광고모델로 섭외가 들어오면 단순하게 광고비를 받지 않는다. 광고비 대신 그는 해당 회사의 지분을 받는다 든지 새로운 사업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 할 기회를 엿본다. 그의 변신과 비즈니스 감각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점점 커지고 있는 ’제이 지‘의 회사는 지금도 쑥쑥 자라고 있다.
10년전 그는 억만장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고 한다. 지난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제이지가 최소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의 자산을 축적해, 힙합계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도 손꼽히는 억만장자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1차로 세웠던 꿈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제이 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의 포부나 변신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