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0:45 (수)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4)'블랙먼데이' 2편비교㊥'탐욕 예찬'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4)'블랙먼데이' 2편비교㊥'탐욕 예찬'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11.10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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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진화하는 영혼의 본질'… '사랑하는 당신=돈' 은유 표현
영화 '월스트리트' 80년대 들어 금융의 ' 脫생산화' 과정을 그려
'정크본드'의 帝王 밀컨은 11억달러 벌금 내고 증권시장서 퇴출

달까지 날게 해 주세요(Fly me to the moon).별들과 놀게 해 주세요(Let me play among the stars).목성과 화성의 봄이 어떤지 보게 해 주세요(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무슨 말이냐 하면요, 내 손을 잡아 달라는 거예요(In other words, hold my hand).무슨 말이냐 하면요, 당신, 제게 키스해 달라는 거예요(In other words, baby kiss me)....당신은 제가 원하는 전부예요(You are all I long for).당신의 모든 것을 숭배하고 흠모한답니다(All I worship and adore)....그러니까요, 무슨 말이냐 하면요(In other words, in other words),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예요(I Love You).

영화 <월스트리트>는 초콜릿처럼 따뜻하고 감미로운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1964년 곡 '달까지 날게 해 주세요(Fly me to the moon)'. 의외다. "제 손을 잡아 주세요, 그럼 달까지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거예요"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달콤한 사랑'과는 관계없는 기계처럼 무미건조한 '돈의 세계' 월스트리트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노래는 밝고 쾌활한 로맨틱 코미디에 적격일 것이다. 실제로 같은 이름의 영화도 있다. 프랑스 영화고,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출근길, 어둡고 칙칙한 건물 사이를 빠르게 걸어 다니는 정장차림의 남녀 직장인들과 빵빵거리는 자동차들과, 그리고, 차갑게 느껴지는 흰색 뉴욕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하니 노래는 뭔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다정한 연인에게 전해 주는 '사랑의 밀어(密語)'가 아니다. 손을 잡아주면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들고, 숭배와 흠모의 대상이 된다.... 현대인에게 이는 '사랑'이 아닌 '돈'인 것은 아닐까?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사랑 예찬곡'은 어느새 '돈'과 '황금'에 대한 '찬가'가 된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탁월한 음악의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돈의 세계' 월스트리트에서 돈에 대한 사랑과 숭배, 흠모는 당연하다. 아니 거꾸로 인지도 모른다. 돈에 대한 사랑과 숭배, 흠모 자체가 월스트리트를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 분)는 이 같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요, 이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중소규모의 미국 증권사 잭슨 스테이넘의 젊은 트레이더 버드 폭스(찰리 쉰 분)와 그의 동료 마빈 사이에 오고간 말을 종합해 보자.

주식인수를 통해 텔다제지 대주주가 된 뒤 주총에서 경영권을 인수하게 해달라고 주주를 설득하는 고든 게코. 주주들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탐욕예찬설’을 내세운 그는 영화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당시 미국 금융계의 사악한 기업사냥꾼을 상징한다.
주식인수를 통해 텔다제지 대주주가 된 뒤 주총에서 경영권을 인수하게 해달라고 주주를 설득하는 고든 게코. 주주들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탐욕예찬설'을 내세운 그는 영화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당시 미국 금융계의 사악한 기업사냥꾼을 상징한다.

챌린저호가 폭발한지 30초 만에 나사(NASA) 주식을 팔아치운 사람, 마흔도 되기 전에 멜코에서 4700만 달러를, 임페리얼에서 2300만 달러를 번 사람, 연간 수입이 메이저리그의 스타 플레이어 데이브 윈필드(Dave Winfield)보다 20배나 많은 사람, 윤리나 도덕과는 아무 관계없이 태어난 사람 ... 월스트리트의 전설, 고든 게코!

그렇다. 영화 속 캐릭터임에도 그, 고든 게코는 영화 <월스트리트> 개봉 이후 영화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영화 속에서 현실로 걸어 나와 월스트리트의 상징이 된다. '윤리나 도덕과는 관계없는 악당'이라도 '메이저 리그의 스타보다 몇 십 배 많은 돈을 번다'면 신화요, 우상이 되는 세계가 월스트리트인 것이다. 이는 곧 이 세상에서 도덕, 윤리, 정의는 부자가 되는 길을 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와 영화 속 인물 고든 게코는 월스리트의 이 같은 성격을 제대로 포착해 '월스트리트 영화의 전설'로 불리고 있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시대 배경은 1980년대 초ㆍ중반, 공간 배경은 미국, 특히 금융계이다. 왜 영화는 이 시기와 장소를 중시하는 것일까? 그 시기, 그 공간에서 이후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태풍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왜 1980년대 미국 금융계를 '탐욕의 월스트리트' '카지노 자본주의' 등으로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난호(㊤)에서 다뤘던 1987년 위기의 근원을 알게 될 것이다. 도대체 1980년대 초ㆍ중반 미국 금융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바로 실물과 금융의 관계다. 실상 금융은 생산 등 실물경제 기능의 보조 역할로 발전해 왔다. 은행은 생산을 위해 자금을 빌려주고, 매매를 위해 자금을 교환해주고, 근로자 급여를 주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고, 필요한 외환 조달을 위해 외환거래를 도와주고, 수출을 위해 신용장을 발부해 준다. 이들은 금융의 전통적인 업무가, 확실히, 생산을 돕는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 같은 금융의 기능이 급속도로 생산과 이탈한다. 이른바 '금융의 실물경제로부터의 이탈'이다. 이는 생산 중심 자본주의를 금융 중심 자본주의로 변모시키는 주요 변수가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이제, 바야흐로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금융의 궤도 이탈도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궤도이탈'의 첫 번째 징후는 외환거래 부문에서 찾아졌다. 처음 이 같은 이상 현상에 주목했던 사람이 저명한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다. 1986년 세계적인 시사전문지 『포른 어페어즈』에 실린 논문에서 그는 "재화와 서비스의 무역보다 자본 이동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며 "재화 및 서비스 무역과 자본 이동은 이미 분리됐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양자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약화됐으며 더욱 나쁜 것은 자본의 이동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거의 주목하지 못했던 변화를 정확하게 집어낸 탁월한 분석이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피터 드러커 교수.그는 1980년대 초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주목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피터 드러커 교수.그는 1980년대 초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주목했다.

거의 같은 시점 뉴욕은행은 세계4대 은행의 외환 거래량 조사에 착수했다. 아무래도 외환 거래액이 너무 높지 않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 은행들이 거래하는 외환액은 약 51조6000억 달러. 이 액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전체의 연간 GNP보다 5배나 많은 것이었으며 세계의 재화・서비스 무역액 4조 달러에 무려 12배가 넘는 수치였다. 드러커 교수의 주장은 전혀 허황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1988년 영국의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특집기사를 통해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 기사를 제시했다.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세계경제의 최대 변화는 환율을 움직이는 힘이 실물 경제에서 자본의 흐름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말 세계를 대공황의 위기로 몰고 간 외환 투기꾼들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금융의 궤도이탈' 현상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자본의 '성격'이다. 앞서 말했듯 금융은 생산 등 실물경제에 대한 보조적인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이 같은 금융의 기능은 급변하게 된다. 금융은 실물을 왜곡하고 침략하고 장악하고 심지어 파괴할 수도 있는 '괴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흔히 레이더스(Raiders)로 불리는 '기업 사냥꾼'을 떠올리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반 보스키, 마이클 밀컨, 분 피컨스, 로널드 패롤만, 제임스 골드스미스, 칼 아이컨. 이름만으로도 기업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마치 광야의 야수처럼 매우 공격적이고 착취적이어서 흔히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을 M&A한 뒤 경영권을 장악하고 기업을 갈가리 쪼개 값 안 나가는 것은 없애고 값나가는 것은 팔아 투자금은 물론 엄청난 차익을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죄 없는 경영진들이 퇴진해야 했고 선의의 투자자들이 희생됐다.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이 노동자였다. 순식간에 직업을 잃고 집을 잃은 처참함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업사냥꾼'들은 그야말로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경제와 산업을 죽이는 암적 존재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정부는 이들이 국가경제까지 좀먹는다고 보고 여러 차례 소탕작전을 펼쳤지만 좀처럼 뿌리를 뽑을 수 없었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니 돈이 모여들어 기업 사냥꾼들은 우추죽순 격으로 생겨났고 그에 따라 '분할 매각'으로 사라진 기업의 숫자도 늘었다. 1983년부터 4년 사이 이들의 손에 희생당한 기업의 수는 1만2200개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셋째, 금융 선물상품이 현물과 분리되며 새로운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시됐던 것도 이때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로까지 연결된다.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선물상품은 1970년대 초기의 모습을 보였으며 1980년대 거대한 파괴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예전 글 <빅 쇼트>㊥에서 언급했듯 2008년 경제위기의 주범이었던 MBS(모기지담보부증권)은 1977년 루이스 레이니어리에 의해 본격적인 은행상품으로 발매됐다. 그리고 이 상품의 빅 히트는 CMO나 CDO 등 변형된 파생상품의 출범을 재촉, 금융파생상품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1982년 마침내 미국 시카고 상업거래소는 세계 최초의 '주식선물시장'을 개장, 금융파생상품의 본격적인 출현을 알렸다.

1980년대 들어서는 또 하나의 빅 히트 파생상품이 등장하는데 흔히 '쓰레기 채권'으로 불리는 '정크 본드'가 그것이다. 1977년 마이클 밀컨이 개발한 이 파생금융상품은 기업사냥꾼들의 자금 조달 수법으로 애용됐다. 사실 1970년대 초만 해도 '채권'이란 우량기업의 전유물이었다. 비유량기업의 경우 채권 발행 자체가 어려웠고 발행한다 해도 판매가 어려웠다. 그러나 유량기업이 내놓은 '우량채권'도 기업의 상황이 나빠지면 어쩔 수 없이 싸구려 채권으로 전락한다. '정크 본드'는 바로 이 같은 '싸구려' 채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쓰레기'였던 채권은 없었다.

정크 본드를 창안, ‘정크 본드의 제왕’으로 불리던 마이클 밀컨.1990년 그는 증권사기죄 등 6개 혐의를 받아 무려 11억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로 몰렸던 그는 당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정크 본드를 창안, '정크 본드의 제왕'으로 불리던 마이클 밀컨.1990년 그는 증권사기죄 등 6개 혐의를 받아 무려 11억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로 몰렸던 그는 당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정크 본드'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금리가 높다. 대표적인'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량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업의 채권, 즉 '정크 본드'인 것은 같은데, 하나는 우량기업이 불량해진 것이고 또 하나는 신흥 기술 기업으로 미래가 매우 밝다면 어떨까? '정크 본드'라는 이름은 같아도 성격은 정반대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개 정크 본드가 동일하게 높은 금리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고객은 당연히 현재는 어렵지만 미래가 밝은 중소기업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로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매우 이상적인 금융상품이 등장하게 된다.

정크 본드 시장은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다. '원금보장에 이자가 20%를 넘는 채권'이라는 이 산상품에 엄청난 돈이 몰리자 1979년 20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규모는 1985년 10배가 넘는 200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기업사냥꾼들은 이 채권을 발행, 돈을 끌어 모았고 주가 조작에 기업해체, 분할 매각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을 저지르며 1980년대 실물경제를 위협했다. 당연히 금융시장도 파행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많은 기업사냥꾼들이 범법자로 한 시기를 마감한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정크 본드의 제왕'으로 불리던 밀컨도 마찬가지. 그는 1980년대 초 투자 회사 드렉셀 번햄 램버트를 설립한 후 위험도가 큰 거래를 되풀이 하다가 결국 1990년 증권사기죄 등 6개 혐의를 받아 무려 11억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회사가 파산한 것은 물론 그는 증권거래 자격까지 박탈당해야 했다.

자,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귀를 간질이는 시나트라의 달콤한 노래 '달까지 날게 해 주세요(Fly me to the moon)'는 영화의 오프닝 뒤 한 번 더 나온다. 게코가 주식시장에서의 공개 매수를 통해 대주주가 된 텔다제지 주주 총회 장면에서다. 경영진은 탐욕스러운 게코가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입, 회사를 탈취하려 한다며 주주들에게 그를 막아달라고 호소한다. 그의 탐욕으로 회사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게코는 아주 유명하고 멋진 연설로 주주의 마음 사로잡는다. 이른바 '탐욕예찬론'이다.

"저는 회사 파괴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회사를 자유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탐욕이란, 신사 숙녀 여러분, 더 나은 단어가 없는데요, 한 마디로, 좋은 것입니다. 탐욕은 또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탐욕은 일을 합니다. 탐욕은 진화하는 영혼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고, 명확하게 자르며, 포착합니다. 탐욕은, 인생, 돈, 사랑, 지식에 대한 모든 형태의 탐욕은, 인류 발전의 표지이며, 탐욕은, 제 이 말에 표지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만, 텔다제지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회사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탐욕은 아름답다"는 말로 자신이 탐욕적이라는 경영진의 비판을 저지한다. 주주총회장에서 이를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모두가 탐욕을 갖고 회사로부터 배당을 더 받고 싶어 하고 더 높은 값에 주식을 팔려고 하지 않나. 그는 이 같은 '탐욕예찬론'으로 경영진의 방어를 넘는 것은 물로 청중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연설을 마친 그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기 자리로 갈 때 바로 이 노래 '달까지~'가 한 번 더 스크린을 적신다. 당신은 제가 원하는 전부예요, 당신의 모든 것을 숭배하고 흠모한답니다.... 이 장면에서 만큼은 이 가사가 분명하게 와 닿는다. '사랑하는 당신=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음 장면이 재미있다. 폭스와 그의 연인 대리언이 미래를 꿈꾸며 달콤한 밀어(密語)를 속삭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장면이 바뀌어도 노래는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시나트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관객을 즐겁게 해 준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매우 기묘한 느낌에 빠진다. 게코의 연설 장면에서 숭배와 흠모의 대상은 '돈'이었는데, 폭스와 대리언의 다음 장면에서는 '사랑'이 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기묘한 느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는 또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낱 주식 브로커로 끝날 것 같아? 아니야, 나는 16세기 이탈리아의 거대한 기업인처럼 세계를 주무를 거야. 나는 지금 별을 향해 총알처럼 날고 있지, 당신도 나와 함께 가고 있는 거야(I'm shooting for the stars. You're coming along for the ride)."

속옷차림의 버디는 슬립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연인 대리언에게 다가가며 이렇게 속삭인다. 그리고 바로 이 쇼트에서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라는 노래 소절의 볼륨이 올라간다. 이제 감독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숭배하고 흠모하는 대상은 사랑일까요? 돈일까요? 아니면 둘 다? 아니면 둘은 같은 걸까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참고로 답을 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버디는 아버지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는 회사를 인수해 연인 대리언과 함께 달과 별로 갈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회사이름이 '푸른 별'을 뜻하는 '블루스타(Bluestar)'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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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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