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민주주의(democracy of manners)'란 말이 있다. 유권자들이 엄청나게 부유한 정치인들은 받아들이되 자기들 지도자가 '나머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외적인 태도를 기르고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백인 하층민들이 어떻게 조롱받고 소외되어왔는지 폭로한 『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낸시 아이젠버그 지음, 살림)에 나오는 표현이다.
책에는 1940년대 그런 몇몇 인물이 등장한다. 1944년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된 지미 데이비스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저 가난한 촌뜨기"를 자처했고 실제 소작농의 아들이긴 했지만 그는 상류층 입성에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컨트리 가수이자 할리우드 배우였고 역사학 교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는 큰소리치거나 장광설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공허한 약속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주 의사당 계단을 말을 타고 오르는 쇼를 보여주는 식의 '사내다움'으로 힐빌리(hillbilly·미국 중서부의 촌뜨기)들의 환심을 얻었다. 결국 유권자들에게 '우리 같은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이런 정치 행태가 꽤나 먹혔던 모양이다. 역시 같은 1944년 아이다호주 유권자들은 '노래하는 카우보이'라 불린 글렌 테일러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했다. 다른 것보다 '동류의식'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그보다 앞서 텍사스주 유권자들은 제분 회사를 운영하다 가수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윌버트 리 패피 오대니얼을 주지사로 뽑아줬고 급기야 미국 상원으로 보냈다.
오로지 그가 부르는 힐빌리 발라드와 라디오를 통해 들려주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야기에 매료되어 '우리 사람'에게 표를 던진 결과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나 성공적이었는가 하면 오대니얼이 1941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물리친 사람이 린든 존슨이었다. 존 F. 케네디에 이어 미국 대통령직에 올라 '위대한 사회'란 비전을 밀어붙였던 인물 말이다.
미주리주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듀이 쇼트란 정치인은 철학 교수, 설교자, 하원 의원 등등 다양한 감투를 쓴 정치인인데 그의 무기는 현란한 말솜씨였다. 그는 두운(頭韻)을 맞춘, 신랄한 형용사를 즐겨 쓰는 연설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를테면 하원을 '나태하고, 비굴하고, 졸리고, 시건방지고, 무기력한 멍청이들의 집합체'라 하거나 루스벨트가 자랑하는 정책자문단을 '전문 바보들'이라 비방하는 식이었다. 세련되지 못하고 촌티 난다는 의미의 '콘폰(cornpone·미국 남부의 대표적 음식인 둥글납작한 옥수수빵) 패거리'로 불린 쇼트 지지자들은 계속 그에게 표를 주어 쇼트가 재선에 성공하게 만들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득표를 위해 혈통과 부 그리고 교육 수준 등이 보통 사람과 흡사한 것처럼 행세한 결과 정치적 영화(榮華)를 누린 이들이 어디 1940년대 미국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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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