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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3)'떠오르는 태양'㊦플라자합의 이면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3)'떠오르는 태양'㊦플라자합의 이면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iexlover@hanmail.net
  • 승인 2019.10.27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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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주요 선진국 미국으로 불러 '弱 달러'종용
엔 강세 활용한 日, 美의 자존심 '록펠러센터 51%'인수에 '제2진주만공습'
미국서 돌아온 日대장상 "드디어 우리가 미국을 추월했다"며 감격의 일성
플라자합의 후 '일본20년 침체론' 에 최근들어 '결국 일본경제에 이득'반론

"백 달러짜리가 많네, 많이 챙겨줬나 봐. 이 난쟁이들은 도쿄에서 쓰레기 같은 걸 먹고 지옥철을 타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휴가 때 돈을 들고 여기 와서 백인 미녀를 끼고 자려고 하는가봐."

톰 그레이엄 형사(하비 케이틀 분)가 죽은 여자 소지품을 챙기며 비아냥거린다. 오만상을 찌푸린 그의 얼굴에 불쾌감과 짜증, 시기와 질투, 혐오가 넘쳐난다. 영화 속 일본인 캐릭터를 보면 적지 않은 미국관객은 그레이엄 형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라오케에서 화난 표정으로 나온 백인 금발 미녀에게 일본 다이마츠 그룹의 상속자 에디 사카무라(캐리 히로유키 다카와 분)는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가만 안두겠다"며 고압적인 자세로 그녀를 윽박지른다. 작고 늙은 일본 기업 중역들은 파티장에서 크고 늘씬한 백인 미녀들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심지어 살인 혐의자 에디를 체포하러 간 형사들은 벌거벗은 백인 미녀들이 그를 황제 모시듯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마다 일본에 대한 다른 인식을 전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건물의 흑인계 CCTV 관리인은 일본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여긴 좋은 직장"이라며 "GM과는 다르다"고 단언한다. 일본 나카모토 그룹을 대변하는 미국인 변호사 밥 리치몬드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로콘 인수 협상 중 일본 기업의 장점을 강조한다. "연구 개발비가 필요하지 않느냐"며 "나카모토 그룹이 많은 걸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미국 상원의 모튼 의원은 이 협상에 반대한다. "그 협상으로 우리 군의 무기 부품이 일본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며 관객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 인물은 그밖에도 일본 문화가 갖는 특수성을 알려준다. "곤니치와 와다시와 게이사츠데스."(안녕하세요.저는 경찰입니다) 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형사 웹스터(웨슬리 스나입스 분)는 비오는 밤 차 안에서 일본어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일본어 연습을 한다.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고참 형사 존(숀 코너리 분)는 "일본에선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가 함께 일할 때 셈파이(先輩)와 고하이(後輩)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 해"라며 일본의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조작된 CCTV 화면을 원상으로 복귀시킨 일본계 미국인 아사쿠마는 "일본에서는 윗사람을 위한 충성심으로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는다"며 "죄를 자백한 사람이 꼭 범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정도면 왜 필자가 이 영화를 가리켜 '1990년 전후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난 영화'로 평가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시 일본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기와 질투, 혐오, 두려움, 공포, 호의, 존중 등 다양하고 상반된 감정이 이 영화 한 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왤까? 왜 미국인은 당시 일본에 대한 이 같은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일까?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일본의 1980년대를 보려는 이유, 그리고 플라자합의에 눈길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카모토 그룹의 파티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일본 그룹의 실력자들. 늘씬한 서양 미녀를 병풍처럼 세워놓은 이 장면은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시기와 질투, 부러움, 두려움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모토 그룹의 파티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일본 그룹의 실력자들. 늘씬한 서양 미녀를 병풍처럼 세워놓은 이 장면은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시기와 질투, 부러움, 두려움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영화만 놓고 보자. 그럼 문제는 일본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돈 자랑, 야쿠자, 야쿠자 산하 백인 미녀들의 매춘, 일본 고위층의 변태적 성(性), 지나치게 경직된 인간관계, 상급자에 대한 확고부동한 충성심, 그리고 음모와 함정. 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시기와 질투가 없을 수 없겠으나 그보다는 혐오감이 먼저다. 일본에 협조한 변호사의 죽음이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함정에 빠진 상원의원의 몰락 등에서 미국관객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르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이 같은 '혐오감'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미국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81년 출범한 레이건 정부의 실정(失政), 특히 경제정책의 실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레이건 정부 1기 경제는 한 마디로 '폭망' 수준이었다. 엄청난 재정ㆍ무역수지 적자에 높은 인플레와 실업률은 전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가 재선되자 '기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제 레이건은 자신이 죽인 경제를 되살려야 했다. 그래서 등용한 그룹이 '환율론자'. '강한 미국'을 내걸고 공세적으로 펼쳤던 '강달러' 정책이 무역수지 적자를 늘렸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였다. 그러니 임기 2기가 시작된 1985년부터는 '약달러' 정책이 불가피했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방법은 놀라웠다. 초강국 미국다웠다. 내로라하는 세계 강국들을 세계의 경제 수도 뉴욕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세계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환율조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말은 그럴 듯 해 보였지만 내용은 하나였다. 미국이 이러저러 해서 무역적자 규모가 너무 크니 다 같이 협력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얘기였다. 미국은, 세계의 지배자다운 면모로, 기간과 목표를 세우고 각국에 목표치를 안겨주며 주어진 기간 내에 목표 달성을 촉구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호텔 2층이었다.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재무장관이 불러들인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G5(선진 5개국) 소속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장들이 한데 모였다. 여기에는 미국의 베이커 장관과 폴 볼커(Paul Volcker)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함께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대장상 및 스미타 사토시(澄田智) 일본은행 총재도 있었다. 참으로 보기 힘든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합의문 하나를 작성해 발표한다.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와 이를 위한 환율 조정에 협력한다는 내용이었다.

표면적인 말이 무엇이었든 합의의 실질적인 목적은 하나였다. 달러 값을 떨어뜨려 세계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을 늘려 무역수지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말이나 합의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달러 하락 폭의 전체 목표치를 설정한 뒤 이를 다시 각국 단위로 할당했다. 목표로 한 달러 하락폭은 10~12%였으며 이를 위해 향후 6주 동안 G%는 총 180억 달러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담액도 구체적이어서 미국과 일본이 각각 30%, 서독이 25%, 프랑스가 10%, 영국이 5%를 분담하기로 했다.

이 합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분담 비율이다. 미국과 일본의 분담액이 전체의 60%였다. 이는 미국의 무역적자에 일본의 책임돠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의 의도는 거의 전적으로 일본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엔화의 가치상승은, 미국의 강달러와 마찬가지로 강한 엔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하락을 의미했다. 결론적으로 플라자 합의는, 일본에게는, 거액의 돈을 들여 자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일본으로서는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미국의 강요에 이기지 못해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잃어버린 20년'과 '잃어버린 30년'을 맞게 됐다고 해석한다. 2019년, 중국이 미국에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체 치열하게 갈등하는 이유도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 보는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노(No)'다. 일본은 미국의 요청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4월 경제평론가 다하라 소이치로(田原總一郞)와 아사히신문 경제담당 특별 편집위원 야마다 아쓰시(山田厚史)가 함께 펴낸 대담집 『다시 패한 일본』를 보면 이때의 분위기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다하라 평론가에 따르면 플라자 합의를 마치고 귀국한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대장상이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드디어 일본이 미국을 추월했다"며 감동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다하라는 "다케시다 대장상은 달러 값을 내리게 협조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항복'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썼다.

다케시다 대장상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결과만 본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경제의 '횡보' 또는 '퇴보'의 원인을 플라자합의에서 찾는 학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 후 10년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플라자합의는 일본경제 '득(得)'이 됐을 수도 있다. 최소 이 10년 기간 동안만 본다면 다케시다 대장상의 해석이 옳았다고 볼 근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경제가 어려워진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라도 플라자합의 이후 10년은 일본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단 합의 직후 과정을 보자. G5는 합의 내용을 잘 지켜나갔다. 각국에 할당된 만큼의 달러를, 주어진 시간 안에 시장에 내놓았다.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다른 나라 화폐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엔화의 상승이 눈에 띄었다.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그달 9월 1일 엔화는 달러 당 240엔이었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 이후 6개월 만인 1986년 3월 들어 엔화는 25% 하락한 180엔을, 그리고 그해 하반기에는 37.5% 떨어진 150엔 대를, 1987년 상반기에는 다시 떨어져 140엔 대를 위협하고 있었다.

뉴욕의 번화가 한 가운데 위치한 록펠러 센터. 1987년 미국 역사기념물로 선정됐을 만큼 상징성이 큰 곳이다. 이런 곳을 1989년 일본기업 미쓰비시가 인수했으니 미국 전체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욕의 번화가 한 가운데 위치한 록펠러 센터. 1987년 미국 역사기념물로 선정됐을 만큼 상징성이 큰 곳이다. 이런 곳을 1989년 일본기업 미쓰비시가 인수했으니 미국 전체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달러 약세, 엔화 강세 환경에서도 미국의 대일 무역수지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플라자 합의가 있었던 그해, 일본의 대미 흑자액은 258억 달러로 다소 떨어졌지만 1986년에는 614억 달러, 1987년에는 521억 달러로 다시 늘어났다. 1987년도의 '521억 달러 흑자'는 특히 의미가 컸다. 일본 입장에서는 1990년으로 예상됐던 500억 달러 흑자 규모를 무려 5년이나 앞당겨 달성했던 셈이다. 1988년과 1989년에는 대미 무역 흑자가 다소 줄기는 했어도 여전히 450억 달러를 넘나들었다. 엔고마저 일본이 갖고 있던 '신기(神技)'의 상술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강한 엔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측면에서 미국과 세계를 강타했다. 비싸진 엔화를 무기로 일본이 미국을 비롯해 세계를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일본의 대외 직접 투자 및 증권 투자 잔액을 보면 알 수 있다. 1984년 각각 379억 달러와 876억 달러 수준이었던 일본의 대외 직접 투자 및 증권 투자 잔액은 1990년 각각 2014억 달러와 5638억 달러로 모두 5배가량 증가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일본은 세계 달러를 집어 삼키는 '블랙 홀'"이라며 "세계의 돈이 일본 1국에만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세계경제는 엄청난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신이 만든 덫에 스스로 빠진 꼴이었다. 특히 미국의 기업과 부동산 인수 및 매입은 단순히 그 규모 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매입 기업과 부동산의 면면을 보면 "일본이 미국의 영혼을 산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 소니는 미국 영화업계의 상징은 콜롬비아 사를 매입했고 세존그룹은 인터콘티넨탈호텔을 사들였다. 1980년대 말 하와이의 땅 3분의 1이 일본인 소유라는 말도 흘러 나왔다. 여기에 1989년 미쓰비시가 미국의 상징물 록펠러센터의 지분 51%를 매입하자 전 미국은 경악했다. '제2의 진주만 기습'이라는 말까지 터져 나왔다. 미국 내에서 많은 경고와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대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미국 스스로가 일본 돈을 원했고 일본 돈 없이 미국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나아가 미국의 핵심 기술까지 넘봤다. 미국의 안전보장에 긴밀하게 관련된 기업마저 인수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1986년 후지쓰의 페어차일드사 매수 불발 사건은 미국이 어느 정도 일본 노이로제에 빠져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다. 후지쓰는 그 해 10월 페어차일드의 모회사 슈른베르주와 미국 내 합작회사를 설립한 후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사를 매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최종적으로 공수표가 되고 만다. 상무성과 국방성이 미국 반도체 관련 방위산업체가 외국 기업에 인수된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어차일드의 방위산업 부문을 별개 회사로 독립시킨 후 경영진을 미국 측에 위임하겠다는 양보를 했음에도 이 계획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을 향한 미국의 심정은 복잡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승전국이었다. 패전의 잿더미 위에서 40년 만에 쌓아 올린 경제력은 놀랍기만 했다. 이에 대한 예찬과 존경심은 일본식 경영의 도입을 부추겼고, 일본이 자기 지위를 위협했다는 점은 두려움과 견제심리를 불러 일으켰다. 거기에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사들이고 빠르게 시장을 잡아먹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미국은 일본을 쉽게만 볼 수는 없었다. '재팬 머니' 없이 미국 경제를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칫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절망의 늪'에 빠질 지도 모르는 위험을 맞게 됐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당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의 경제 체력이 떨어진 최근 10수년만 본 젊은이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영화 <떠오르는 태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몇 차례 얘기했듯 이 영화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 일본에 대한 미국의 복잡한 심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상처 난 자존심'을 덮고 있던 두터운 베일마저 걷어내 버렸다. 미국이 감추고 싶었던 '상처'가 분명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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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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