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만행에 눈을 감거나 침묵하는 등 방조해 비극 낳아
美서 마약성진통제 부작용 아랑곳 않은 약사, 유통업체 돈벌이 열중
멀리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서 가까이는 광주 민주화항쟁까지 인륜에 어긋나는 범죄를 볼 때마다 우리는 특정인을 '원흉'으로 꼽고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눈 뜨고는 못 볼 그런 참극이 오로지 우두머리 한 두 사람의 소행 탓일까.
주로 기업경영의 비리를 분석한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맥스 베이저먼 지음, 민음사)는 그런 통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눈에 보이지 않되 수많은 사람들이 만행에 눈을 감거나 침묵하는 등 방조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95년 미국의 제약회사 '퍼듀 파머'는 FDA(식품의약국)에서 진통제 옥시콘틴의 승인을 받았다. 옥시콘틴 자체는 진통 효과가 강력하고 오래가기 때문에 말기 암 환자 등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이듬해 시판에 들어간 이래 퍼듀 파머사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은 2019년 파산 신청을 하기까지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 CDC(질병예방통제센터)는 2009년 이후 적어도 미국인 64만 명이 옥시콘틴 중독으로 추산할 정도의 비극이 숨어 있다.
약의 주성분인 오피오이드는 마약성이어서 올바른 처방과 복역법을 따르지 않으면 헤로인 등 마약처럼 중독 위험이 컸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법적인 처방으로 옥시콘틴을 구입하고, 물에 희석하거나 가루를 내어 '합법적 마약'으로 복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제는 퍼듀 파머가 이런 위험성을 알고도 의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옥시콘틴에 대한 잘못된 과학적 증거를 제공하고 영업 사원들에게 "중독 위험이 1%도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교육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더 많은 용량을 더 많이 판매하는 약국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강력한 판촉 활동을 펼쳤다.
일부 의사, 약사, 약품 유통업체도 여기 가세했다. 비의료적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오피오이드 처방전을 남발하거나, 처방전을 무시하고 약을 팔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웨스트버지니아주 커밋은 인구 수백 명에 불과했는데 2005년 그곳의 약국 새브라이트는 하루 평균 5만 4,000정의 오피오이드 제제를 조제해 팔았다. 미국 의약품 유통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매케슨, 아메리소스버진, 카디널 헬스 3사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네 블록을 사이에 둔 약국 두 곳에만 처방 진통제 2.000만 정을 공급했다. 이들 업체는 수상할 정도로 발주량이 증가한다면 연방법에 따라 신고해야 하는 데도 막대한 수익을 노려 '방조'함으로써 오피오이드로 인한 피해를 키웠다.
그러니 미국인 수천만 명을 약물에 의존하게 만들고, 수십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사태는 단지 한 기업 또는 한 기업인이 홀로 저지른 게 아니다. 욕심에 눈이 먼 수많은 '파트너'들이 공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비단 기업 부정뿐일까. 홀로코스트에서 권력형 비리까지 '공범' 없이 이루어지는 범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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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