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 14:20 (목)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57) 베짱이가 '기본소득' 누릴 자격 있나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57) 베짱이가 '기본소득' 누릴 자격 있나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5.11.1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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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론자들은 게으른 베짱이의 구매력도 유지해야 '경제 선순환'유발 '분수효과' 주장
기본소득 도입되면 최소한의 생계 유지… 일자리 기피로 '사회의 생산성 하락' 반론도

무더운 여름날 개미는 땀을 흘려 열심히 먹이를 모았습니다. 베짱이는 그런 개미를 보고 물었습니다. "추위와 먹을 것이 이렇게 많은데 왜 힘들게 일을 하지? 나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여름을 즐겨 보라고."

그러자 개미가 말했습니다. "곧 겨울이 올거야. 지금부터 먹이를 모아 두어야 겨울을 보낼 수 있어. 너도 그렇게 놀지만 말고 겨울을 대비해 두는 게 좋을거야."

하지만 베짱이는 전혀 걱정하지 않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먹을 것이 무성한데 갑자기 먹이들이 모두 사라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미야 넌 도데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거야? 먹을 건 얼마든지 있어. 하루아침에 이 풍성한 먹이들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거야?" 개미는 베짱이의 말에 아랑곳 않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베짱이는 그런 개미를 비웃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왔습니다. 숲 속은 꽁꽁 얼어붙고 눈이 쌓여 먹을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개미는 여름 동안 부지런히 모아 둔 먹이를 창고 가득히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리던 베짱이가 개미의 집으로 찾아와 먹이를 나눠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개미야 먹을 것을 좀 주지 않겠니?" 그러자 개미가 대답했습니다."여름에 양식을 미리 준비해 놓지 그랬니?" "나는 노래를 불러야 했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었어." "아~그랬니? 여름에는 실컷 노래를 불렀으니까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춤을 좀 추어야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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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통화 증발을 야기할 수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베짱이만 좋은 '분수효과'=나중을 대비해 부지런히 일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전하는 전통적 교훈은 근면과 성실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분배 정의를 외치는 경제학자들의 '분수효과'를 옹호하는 중요한 논거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배짱이는 저소득 소비주체로 소비만 하며 현재의 즐거움만 누리다가 겨울에 구매력을 상실하게 되면 경제 시스템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고소득 자본축적의 주체인 개미가 부만 축적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시장의 총수요가 줄어들어 개미가 가진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도 떨어지게 됩니다.

겨울이 되어 베짱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고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저소득층 지원, 복지 등을 제공하면 베짱이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저변의 소비가 시장의 수요를 지탱하고 결과적으로 개미의 부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즉 아래 계층의 건전한 구매력이 위 계층의 경제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배론자들이 주장하는 '분수효과'의 선순환 과정입니다.

대표적인 분수효과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닦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장한 경제이론으로, 그는 경기불황 극복을 위해서는 크게 민간소비, 민간투자, 정부지출, 순 수출(수출-수입) 등으로 구성되는 총수요의 구성요소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은 민간소비를 끌어 올리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케인즈는 정부지출 확대와 더불어 전체 가계 가운데 특히 저소득층 및 중산층에 부과되는 세금 인하를 통해 민간소비를 자극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나다. 케인즈가 저소득층 및 중산층에 대한 세금인하에 주목한 이유는 이들의 '한계소비성향'이 고소득층에 비해 높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금 인하를 통해 가처분소득, 즉 세금을 제외한 실질소득을 동일 금액만큼 높여 줄 경우 고소득층은 소비 증가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생수 한 통을 목마른 자(저소득층 및 중산층)와 그렇지 않은 자(고소득층)에게 주었다고 해보죠. 전자는 바로 대부분을 마셔버리지만, 후자는 일부만 마시거나 나중을 위해 보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케인즈 이론을 분수 효과와 동일시하는 이유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소비 진작의 구심점을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소득증대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 및 중산층에서 유발되는 '소득증대→소비증대→생산증대→소득증대'라는 경제의 선순환 효과가 마치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분수처럼 궁극적으로 부유층에게도 혜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죠.

◇개미의 반론=그러나 분배론자들이 분수효과의 긍정적인 면으로 개미와 배짱이 우화를 내세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베짱이의 관점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개미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옵니다.

개미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모은 식량을 베짱이에게 나눠주는 것은 인도주의적일 수 있죠. 그러나 베짱이가 그 식량을 받고도 여전히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노래만 부른다면 성실하게 노동하는 우리들의 근로의욕은 어떻게 될까요?"

분수효과를 노린 경제정책, 예컨대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베짱이는 노동없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된 일이나 저임금 일자리를 기피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전체 사회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게 불보듯 뻔합니다.

기본소득의 정신은 분배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노동이라는 사회적 의무와 가치를 약화시켜 '베짱이 계층'을 고착화시키고 성실한 '개미 계층'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본소득 정책에 충실할수록 노동 유인은 더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베짱이가 최소한의 생활을 넘어 '여유'까지 기본소득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공동체 전체의 근면함이라는 덕목이 훼손될 위험이 커집니다.

분수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물'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개미의 세금부담 증가로 귀결됩니다. 과연 개미들이 앉아서 당하기만 할까요? 엄청난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개미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소득이 과도하게 징수된다고 느낄 경우 투자를 줄이고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이탈 행위'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베짱이에게 공급되어야 할 미래의 자원 기반을 약화시켜 분수효과의 동력을 잃게 만듭니다.

게다가 기존의 복지제도가 기본소득에 통합될 경우 복지혜택을 받아오던 취약계층이 기본소득 액수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합니다.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베짱이에게는 '생색내기'에 불과한 소액이, 개미에게는 과도한 세금징수가 되어 모두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거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통화 증발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모든 베짱이에게 현금이 지급되면 총수요는 급격히 증가합니다. 만약 개미들의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물가만 치솟게 합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되면 베짱이가 기본소득으로 살 수 있는 실질적인 식량의 양은 줄어듭니다. 결국 명목상의 기본소득은 고정되지만 그들의 구매력은 떨어져 빈곤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있습니다. 개미가 땀 흘려 생산한 노동의 가치가 인플레이션으로 왜곡된다면 사회 전체의 경제적 혼란을 부르고 분수효과의 핵심 목표인 소비진작을 통한 안정적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꿈꾸는 따뜻한 공존 뒤에 숨겨진 '노동 유인, 재원,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해야만 비로소 지속가능한 분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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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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