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면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맛이 냉면 육수에 배어 들어 감칠맛
아지노모토는 그런 수고 덜어줘 한여름에 굳이 동치미 담글 필요가 없어져
일제강점기 아지노모토사 공격적마케팅 펼쳐…음식점 대상으로 신문광고

'아지노모토(味の素)'란 말을 들어본 이도 거의 없을 터이다. 1908년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합성에 성공했다는 글루탐산 소다(MSG)는 음식의 감칠맛을 돋우는 마법의 조미료를 상품화한 것이다.
요즘도 개그맨들의 이야기에 "MSG를 많이 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지만, 60~70년대만 해도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갔던 조미료의 대명사였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린, 국산 조미료 '미원'과 '미풍'의 치열한 마케팅이 벌어지기 전까진 말이다.
그 아지노모토를 뜻밖에도 『냉면의 역사』(강명관 지음, 푸른역사)에서 만났다. 책은 신라 진흥왕 일화에서부터 기원, 조리법, 상품화 등 냉면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룬 완결판. 여기 냉면과 외식산업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아지노모토가 등장한다.
냉면은 19세기 말 해장국, 추어탕, 짜장면과 더불어 우리나라 외식산업 초창기의 대표상품이었단다. 1883년 개항한 인천을 비롯해 부산, 원산 등에는 서점, 병원 학교, 은행 등 이전에 없던 다양한 기관과 사회조직이 등장하면서 거기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점심이 문제가 됨에 따라 '매식(買食)'이 자리 잡았는데 그 주인공 중 하나가 냉면이었다는 것.
이에 따라 평양의 명물이었던 '평양냉면'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는데 1920년대에 이르면 여름냉면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아지노모토의 인기가 치솟았다.
냉면이란 무엇인가. '메밀국수를 동치밋국에 말아 김치(무와 배추)를 얹고 거기에 돼지고기 편육을 올려서 만든 차가운 국수' 아닌가. 냉면의 원조인 평양냉면을 만들 때 평양 사람들은 동치미를 담그면서 익힌 쇠고기나 돼지고기 덩어리를 넣어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맛이 냉면 육수에 배어 들어 감칠맛이 났다는 것이다. 한데 아지노모토는 그런 수고를 덜어주었다. 한여름에 굳이 동치미를 담글 필요도 없어졌다. 그저 순백의 가루를 '조금'만 넣으면 손님들이 환영하는 냉면이 탄생하니 값이 조금 비싸도 아지노모토를 쓸 수밖에.
여기에 아지노모토사의 공격적 마케팅도 한몫했다. 판매촉진을 위해 지역별로 판매점을 묶어 아지모노토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1915년 『매일신보』를 시작으로 신문광고를 쏟아부었다. 흥미로운 것은, 1925~1939년 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아지노모토 광고가 『동아일보』의 경우 총 90건이나 되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상이 냉면 광고였다고 한다.
젓가락으로 냉면을 집어든 손님 그림을 싣고 "맛이 딴판일세"라는 카피를 붙인 식이었다.
지금이야 인공조미료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한때는 조선 고유 음식에도 일제의 '손길'이 미친 뜻밖의 사례라 하겠다.
사족 하나. 냉면에 겨자와 식초를 넣어 먹는 것도 우리 전통 식습관이 아니란다. 『주식방문』 등 옛 조리서에 식초를 넣어 먹는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 20세기 전반 『조선무쌍 신식 요리제법』에 가서야 '여름냉면'에 "설탕과 겨자와 초를 쳐서 먹으나…"란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한데 이것은 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중독 예방 등 위생을 위한 방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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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