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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만든사람들⑳번스타인㊦ '團員의 화음'강조
뉴욕을 만든사람들⑳번스타인㊦ '團員의 화음'강조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329@naver.com
  • 승인 2019.10.14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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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로 나서자 술렁이던 카네기홀은 일순 그의 손끝에 열광의 도가니
400회 넘는 콘서트 지휘하며 "오케스트라는 존경과 사랑으로 뭉쳐야"
제2바이올린 연주자의 숨은 조력을 중시 하는등 '배려와 연대'리더십

전날 그는 친구들과 술과 담배로 찌든 채 새벽4시가 되서야 집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비몽사몽한 시간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른 새벽이었다. 카네기홀 부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녁에 뉴욕필하모니 공연에 네가 지휘를 해야해." 번스타인은 한 번도 뉴욕필하모니와 연주를 한 적이 없었다.

리허설도 없이 그렇게 그날 밤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몸살로 공연장에 나타나지 못했다. 천재일우의 기회란 이런 것인가. 그는 이 연주 지휘를 발판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대타로 나선 무대에서 번스타인은 멋지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당시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공연을 하루 남기고 몸살로 눕게 되자 그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
대타로 나선 무대에서 번스타인은 멋지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당시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공연을 하루 남기고 몸살로 눕게 되자 그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 사진=번스타인 인터넷 사이트/leonardbernstein.com)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오늘 연주 지휘를 하게되었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맨트에 청중들은 술렁거렸다. 그렇게 시작된 연주는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우뢰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다음날 뉴욕타임즈는 "한 편의 아름다운 미국의 성공스토리! 카네기 홀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와 다정한 멜로디가 저 멀리 하늘로 날아 올랐다"라는 음악전문 기자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인들은 부강해진 나라에 살고 있지만 늘 유럽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귀족풍에 짖눌렸고, 런던의 고풍스런 건물을 부러워했다. 어떠한 걸작을 만들어도 유럽의 전문가들에 의해 촌스럽다는 평가를 얻었다,

미국인들은 그래서 이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언젠가는 우리 후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시간과 돈을 투자해 후세들을 길렀다. 음악분야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항상 미국에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유럽 출신들이었으며 뛰어난 젊은이는 거의 유럽파였다. 유럽에서 공부를 했다.자국 출신의 토종 순수한 대음악가의 탄생에 목말라 했다. 레너드는 그런 시대적 배경속에서 미국민들의 응어리진 한을 분출해주었으며 통쾌하게 미국 전역에서 무대의 전면에 섰다.

그 이후 그는 뉴욕 필하모니가 주 공연장을 카네기홀에서 링컨센터로 이사하기 까지 무려 427회의 콘서트를 이끌었다. 그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존경과 사랑으로 맺어져 있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레너드가 10년 동안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있을 때 무엇보다도 정신을 더 강조했다.

연주 기술이 다소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의 높은 덕성으로 이런 결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 지휘자의 음악 정신에 모든 단원들이 영적으로 뭉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듯 뛰어난 연주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언젠가 한 TV프로그램에서 청중이 그에게 질문을 했다. "수많은 악기 중 가장 다루기 어려운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는 "제2 바이올린이다.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화음을 이루는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이다. 제2바이올린은 조력자이며 전체 화음에 도움을 주는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그림자만 있을 뿐이다.

1958년 뉴욕필 최초 미국 출신 상임지휘자이자 음악감독에 오른 번스타인은 그렇게 연주이전에 단원들간의 인간적인 화음을 만들었다. 그가 지휘하는 뉴욕 필은 공연마다 대성공을 거두었고, 명실공히 뉴욕 필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스타 기질도 농후해,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매력이 넘쳤으며, 당시 지휘자의 이미지였던 엄격함을 탈피해 청중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흥이 나서 점프를 하는 등 번스타인의 열정적인 지휘 모습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나치 출신의 독불장군 기질의 카라얀과는 달리, 상냥하고 열정적이며 대중적 감감이 있었다. 1990년 심장발작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추모식은 세 곳에서 열렸다. 카네기홀, 브로드웨이에 있는 마제스틱 극장 그리고 웨스트 사이트 북쪽에 있는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 그리곤 브루클린의 한 묘지에 안장됐다.

그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탁월한 재능을 선천적으로 부여받았으며 그것을 늦지 않게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탤런트를 유감없이 발산하고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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