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청구 자금으로 첫 삽.…박태준 초대 사장 "선열의 피로 짓고 있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30분. 포스코( 포항제철의 후신)가 처음으로 용광로에서 쇳물을 흘려보낸 시각이다. 태양열로 채화된 불로 용광로를 지폈고 쇳물이 터져나오자 현장에 있단 박테준 사장 등 포항제철 임직원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다. 일부는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후 46년동안이 지난 3일 새벽 2시 경 포스코는 누적 쇳물 생산량 10억t을 달성했다. 그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 일단 두께 2.5㎜, 폭 1219㎜인 철판(열연코일)을 쭉 늘여 놓았을 때 거리는 지구에서 달을 54번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38만㎞다. 또한 중형 승용차 10억대(1대당 1t 기준)를 만들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높이 555m)를 약 2만 채(1채당 5만t 기준) 건설할 수 있는 규모다.ㆍ
이렇게 생산된 포스코의 철은 곧 ‘조국’의 경제 근대화 초석이 됐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는 길을 열었다. 현대자동차는 이 철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조선업은 일어났다. 자동차는 세계 5위의 국가가 됐고
조선업은 최근 1위자리를 탈환해 세계 조선시장을 이끌고 있다. 물론 포스크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철강회사란 타이틀을 얻었다. 고로 9개를 보유한 세계 5위 철강업체로 우뚝 올라섰다. 글로벌 철강 전문 분석 기관인 WSD (World Steel Dynamic)는 2010년부터 올해가지 10년동안 포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포스코를 꼽았다. 지난 7월 세계경제포럼(WEF)은 포스코를 '등대 공장(Lighthouse Factory· 제조업의 미래를 이끌 공장)'으로 선정했다.
국내 기업 중 처음이다. 포스코에 따르면 첫 생산부터 누적 1억t을 달성하는 데 16년이 걸렸고 1억t에서 5억t을 생산할 때까지도 똑같이 16년이 소요됐다. 이후 누적 10억t 생산에는 14년이 걸렸다. 현재 국내 철강 산업만 따지면 포스코의 비중은 40%에 이른다.
포스코는 ‘민족기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 초반 당시 종합제철공장을 건설한다고 하자 세계 코웃음쳤다. 지을 돈도 없고 꿔 줄 나라도 없었다. 가난한 동방의 작은 나라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종잣돈은 선열의 희생 댓가로 마련했다. 1965년 한일간 국교가 정상화 되면서 받은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으로 용광로를 지었다.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선열의 피로 우리는 공장을 짓고 있다.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동해에 빠져 죽자”며 결의를 다졌다.
포항제철이 둥지를 튼 곳 오른쪽에는 바다가 있어서 이른바 ‘우향후 정신’이 탄생한 배경이다. 특히 오랜만에 외화 자금이 들어오니까 여기 저기서 돈을 빼내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사람에서부터 정부 예산으로 돌려 다른 일을 하자는 정부 인사가 줄을 섰다. 그런식으로 돈을 쪼갰다면 포스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그 유명한 ‘종이마패’가 등장한다. 박태준 사장이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박태준이 쓰고 간 '건설 계획서' 대로 일을 추진하라며 그 계획서 왼쪽 모퉁이에 사인을 해줬다. 오늘날 포스코는 시가총액(2일기준) 19조3천억원으로 세계 상장 철강업체 중 2위를 달리는 글로벌 업체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