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15 (목)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2)'빅 쇼트'㊥ 파생상품의 출생 秘史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 위기史(2)'빅 쇼트'㊥ 파생상품의 출생 秘史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19.09.27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레이건 정부 시절 S&L(저축대부 조합)파산이 금융 파생 상품의 폭발 불러
'월가의 전설' 레이니어, '1조 달러 상당 모기지 론' 부실의 소방수로 나서
美타임誌,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에 이름 올리자 지난해 '후회 스럽다"
8888
영화 <빅 쇼트>에서 투자자에게 자신이 만든 MBS를 설명하는 레이니어 . 그는 월가의 전설이었으나 금융위기의 주멈으로 몰렸고 지난해 '파생상품을 마든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ABS, MBS, CMO, CBO, CDO, CLO, CDS, CDO-squared, CDO-cubed, synthetic CDO... 금융파생상품은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아예 '촉수금지' 대상이 된다. 과장이 아니다. '금융공학'의 발달로 웬만한 수학통이 아니면, 파생상품은, 만들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잘하면 파생상품 하나로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셔 블랙(Fischer Black)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가 이를 입증한다. 1973년 이들이 개발한 파생금융상품 가격 결정 모델인 '블랙-숄즈 이론'은 이들에게 1997년 노벨경제학상의 영예를 안겨줬다.이 어려운 파생상품 이야기를 영화는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상>편에서 말했듯 코미디 작가 출신의 감독 덕에 관객은 중간 중간 웃으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 그들은 이 영화를 얼마나 이해했을까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적 답을 내기 어렵다. 생각 컨데 '대충' 정도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대한 리뷰나 신문기사, 전문가들의 간단한 코멘틀 별도로 읽었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그만큼 어렵다.하지만 겁내지 말자. 우리에게는 많은 좋은 참고문헌이 있지 않나. 첫째,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영화의 원전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다큐 전문작가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의 동명 작품이 원전이다. 번역서도 있으나 기왕이면 원전을 보라.

레이니어의 삶은 극적이다.1968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투자은행 살로몬브라더스 파트타임 직원으로 지하 우편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됐고, 그와 동시에 대학을 그만뒀으며, 10년 뒤에는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트레이더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파생상품의 아버지'가 됐다.
레이니어의 삶은 극적이다.1968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투자은행 살로몬브라더스 파트타임 직원으로 지하 우편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됐고, 그와 동시에 대학을 그만뒀으며, 10년 뒤에는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트레이더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파생상품의 아버지'가 됐다.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지를 없앨 수 있다. 그리고 번역서의 경우 영화제목과 달리 『빅 숏』으로 표기돼 있다. 자칫 검색에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루이스의 또 다른 저작 『라이어스 포커(Liar's Porker)』도 도움이 된다. 둘째, 영화의 영문 스크립트가 있다. 인터넷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역시 번역 과정에서의 혼란의 소지를 줄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종 파생상품이나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개설서, 전문서 등이 많다. 이들 모두가 어려운 영화 이해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좋은 참고문헌이 많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잘 꿰야 한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이 영화의 경제사적 의미를 기술하는 방식도 고민이 됐다. 영화를 ①파생상품의 발전과정이나, 또는 ②모기지 금융의 발전과정과 연계시킬까 생각해 봤다. 매우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년 묵은 솜이불처럼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감독의 재치에 감탄하게 된다. 캐릭터에 경제를 녹여라! 그리고 관객의 시선을 캐릭터에 몰입하게 하라! 이 방식이 어려운 파생상품 이야기를 관객의 집중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식일 것이다.

필자도 그런 전략을 쓰기로 했다. 루이스 레이니어리, 마이클 버리, 마크 바움, 자레드 베넷 벤 리커트 등 영화 속 캐릭터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상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아보자. 시대와 환경에 맞는 캐릭터의 특성을 잘만 포착하면 어려운 경제 얘기를 훨씬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1970년대 후반 이후 1980년대까지의 전성기를 보내며 '월가의 전설'로 불리던 인물 루이스 레이니어리(Lewis Ranieri)를 보자. 영화에서는 기껏 조연에 불과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영화 속 인물 그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겼다. 영화에서 도이치뱅크의 트레이더이자, 해설자 역을 맡은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분)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70년대 후반 은행은 큰돈을 버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따분한 곳이었지요. 그러나 루이스 레이니어리가 등장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마이클 조던, 아이팟, 유튜브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영화의, 레이니어리에 대한 평가는 기억해 둘 만하다. "그가 은행의 모든 것을 바꿨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관객의 호기심을 잔뜩 끌고는 기대했던 추가 설명 없이 영화는 곧장 2008년 모기지 위기로 '점핑'한다. 영화 초반부만 보면, 관객의 뇌리에, 레이니어리라는 인물 하나가 세계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든 '주범'이란 인식을 깊게 새겨 놓는다. 그가 누구기에, 그리고 그가 뭘 했기에? 그리고 이런 의문을 준다. 과련 그런 평가는 합당한 것일까?

sbdyrxkdlawm
'금융위기 때 비난받아 마땅한 25인'을 선정한 2009년 『타임』지의 인터넷판 기사. 1위는 안젤로 모질로 컨트리사이드 파이낸셜 전 최고경영자(CEO), 2위는 필 그램 전 상원 금융위원장, 3위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전 의장이었다. 거기에 레이니어도 들어있었다.

레이니어리는, 일반인에게는 낯설겠지만, 금융사에서는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 하나가 그의 역사적 의의를 알려준다. 'MBS의 아버지(The father of MBS)'라는 것이다. 흔히 '주택저당증권'으로 번역되는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는, 잘 알려진 대로, 2008년 위기의 진앙이다. 그러니, 영화에서처럼, 위기에 대한 그의 책임론이 부각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2009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금융위기 때 비난받아 마땅한 25인' 명단에도 스무 번째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

 1위는 안젤로 모질로 컨트리사이드 파이낸셜 전 최고경영자(CEO), 2위는 필 그램 전 상원 금융위원장, 3위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전 의장이었다.

그 역시 이 같은 자신의 평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해 71세가 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착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MBS를 만드는데 핵심역할을 한 사람으로 (그것을 만든 게) 후회가 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MBS는 모든 이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오ㆍ남용됐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MBS의 '탄생' 자체도 문제지만 '성장과정' 역시 매우 잘못됐다는 얘기다. 이 '성장과정'의 문제는 다음 회에 상세하게 얘기할 생각이다. 이번 회에는 무엇보다 MBS에 대한 기초 이해가 필요하다.

MBS는 보통 '자산유동화증권' 또는 '자산담보부증권'으로 번역되는 ABS(Asset-Backed Securities)의 일종이다. ABS란, 말 그대로 '자산(Asset)'을 '근거로(Backed) 발행된 증권(Securities)'을 가리킨다. '자산'이란 보통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형, 무형의 유가치물'로 규정되는데, 회계 상 현금이나 예금, 증권 등 1년 이내에 환금할 수 있는 '유동자산(liquid assets)'과 부동산이나 설비 등 1년 이상 장기 보유하게 되는 '비유동자산(non-liquid assets)'으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기업, 특히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고 갖게 되는 '채권(債權)'도 '자산'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채권자산'도 1년을 기준으로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은 대출이 생명이다. 지속적인 대출이 있어야 명실상부한 '은행'이랄 수 있다. 하지만 대출해 줄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다. 금융기관이 작으면 작을수록 그렇다. 그러니 만기 1년 이상의 '채권(債權)자산', 즉 비유동성자산을 유동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ABS는 그 같은 기업, 특히 금융기관의 희망에 의해 탄생한 상품이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비유동성 자산에 근거한 증권을 ABS라 칭했으나 점차 특정한 자산, 즉 '만기 1년 이상의 채권자산'에만 한정되는 용어로 정착됐다. 카드사의 카드 대출이나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등을 근거로도, 당연히, 증권을 발행할 수 있으며 이들 역시 ABS의 일종이 된다.

ABS를 모기지 대출과 연계시켜 보자. 고객에게 모기지를 담보로 해 20~30년 장기로 큰돈을 대출해 준 은행은 매달 이들에게 아주 적은 원금과 이자를 받는다. 그러니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은행은 돈이 떨어진다. 더 이상 대출이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많은 이를 힘들게 한다. 은행은 돈을 못 벌고, 국민은 집을 못 구하고, 주택시장은 침체되며, 국가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국가가 한없이 주택구입 자금을 지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 '빅 쇼트'의 원작인 다큐 전문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빅 숏』. 이 책과 함께라면 어려운 영화 '빅 쇼트'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빅 쇼트'의 원작인 다큐 전문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빅 숏』. 이 책과 함께라면 어려운 영화 '빅 쇼트'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MBS의 작동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은행의 채권자산을 근거로 증권을 만든 뒤, 이를 팔아 현금을 만들고, 이 현금으로 다시 주택구입 희망자에게 대출을 해 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모두에게 행복을 준다. 은행은 돈을 벌고, 국민은 집을 사고, 건설업자는 집을 짓고, 국가는 박수를 받는다. MBS는 이 같은 은행, 주택시장, 국가, 국민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등장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래서 '일거다득(一擧多得)'의 장점을 갖는 제도요, 상품인 것이다.

MBS로 불릴 만한 최초의 것은 1968년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애칭 '지니 메이(Ginnie Mae)'로도 불리는 연방저당금고(GNMA, The Government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가 이 해 처음으로 대출기관의 MBS를 승인하고 이를 보증함으로써 증권의 유통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모기지와 관련해서는 '대출'이라는 1차 시장 외에 '증권'이라는 2차 시장이 형성됐다. 이로써 1968년은 금융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인 한 해였던 것으로 기억할 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증권은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온갖 전문가와 실력자가 달라붙었건만 투자를 유인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①구성이 복잡해 투자자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웠고 ②투자자가 대출자의 원리금을 그대로 인수하는 형식이어서 매달 원리금을 수령해야 하는 등 불편했으며 ③만기 전 변제나 이자율의 변동,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등 증권의 리스크를 대부분 투자자가 부담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는 MBS의 태생적 한계였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 한계를 깨지 않는 한 어렵게 탄생한 MBS 시장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었다.

지지부진하던 MBS 시장은 그것이 햇빛을 본지 꼭 10년째 되던 1977년, 한 전문 트레이더에 의해 극적 분기점을 맞는다. 그 주인공이 바로 레이니어리였다. 1968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투자은행 살로몬브라더스 파트타임 직원으로 지하 우편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됐고, 그와 동시에 대학을 그만뒀으며, 10년 뒤에는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트레이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었다.

1977년 그 해, 그는 살로몬브라더스 MBS팀을 맡게 된다. 1947년생인 그는 당시 겨우 서른 살이었다. MBS를 중요한 미래 상품으로 본 회사는 오로지 그의 능력 하나만 믿고 파격적으로 그에게 모기지 팀을 맡겼다. 그리고 그는 회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과거 1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MBS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그와 회사와 나아가 금융의 역사에 환 획을 긋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그 자신과 회사와 금융계 전체에 상상을 초월한 부(富)를 선사했다.

그는 MBS가 갖는 세 가지 태생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는 2000년 발표된 자신의 한 글에서 이와 관련된 두 가지 '혁신'을 이야기했다.

첫째, 투자자들에게 증권을 싸게 넘겼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투자자들은 증권의 '복잡한 내용'보다는 '싼 가격'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그는 "당시 우리 트레이더 중 증권의 평균 수명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증권 상품은 조기상환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유능한 트레이더는 수학에 기초한 증권의 '수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설명'을 통한 설득보다 '싼 가격'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상품이 '복잡성'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첫 번째 전략은 탁월했다. 하지만 아직 감탄하기에는 이르다. 두 번째 전략은 더 탁월했기 때문이다. 기존 MBS가 갖는 복잡성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했다고 치자. 월정 원리금 이체와 리스크의 투자자 부담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보자. MBS는, 앞서 말한 대로, '채권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이다. 그러나 채권자산은 모기지대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용카드나 자동차 대출, 학자금 대출 등 은행의 채권자산은 다양하다. 은행은 이들도 증권화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이들 대출자산을 섞어 하나의 증권상품으로 만들면 기존 MBS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월정 원리금의 이체나 리스크의 부담도 사라지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이로써 그는 단일 모기지 론에 기초한 기존의 MBS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주택담보부증권', 즉 CMO(Collateralized Mortgage Obligations)의 창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이때 '모기지' 대신 다른 '부채'로 상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신용카드 대출자산이나 자동차 대출자산을 이용해 새로운 증권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다른 이름이 붙어야 한다. 흔히 '부채담보부증권'으로 번역되는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가 그것이다. 이로써 그는 CMO와 CDO의 창시자가 된다. 필자 생각에 'MBS의 아버지'라는 그에 대한 호칭은 잘못된 것이다. 이 호칭은 1968년 지니 메이의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보다는 'CMO의 아버지'나 'CDO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그에게 더 어울려 보인다. 파생금융상품시장에서 CMO나 CDO의 규모는 MBS를 넘어선다. 결코 그 호칭이 이전 것보다 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그는 '증권화(Securitization)의 아버지'로도 불릴만 하다. 1977년 그가 CMO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한 월스트리트 기자 앤 몬로(Ann Monroe)가 그에게 CMO를 만든 과정을 묻고 그것을 한 단어로 뭐라 쓰면 좋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그가 답한 단어가 바로 '증권화(securitization)'였다. 하지만 당시 그런 단어는 없었고, 그로 인해 기자에게 항의를 받았노라고 했다. 그는 없는 단어, 없는 개념까지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가리켜 '증권화의 아버지'란 호칭은 그다지 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MBS 시장의 '대폭발'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1979년 마침내 그 계기가 찾아왔다. 그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올림으로써 도화선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금리가 오르자 지역주민들의 소액 예금을 통해 주로 모기지 대출로 운영되는 미국의 지역 금융기관 S&L(저축대부조합, Savings and Loan Association)이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됐고, 모기지 대출자산을 유동화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S&L은 급히 레이니어를 찾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미국, 아니 세계 전체를 통해 레이니어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레이니어에게 증권화 해 달라는 모기지 론의 규모는 무려 1조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화로 돌아가자. 이제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더 이상 은행은 따분한 곳이 아니다"라는 해설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돈 벌 준비가 됐느냐"는 레이니어의 외침도 훨씬 생생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류 한 가지는 지적하자. 레이니어는 앞서 말한 대로 1947년생이다. 모기지 부서를 처음 맡았던 1977년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 살이었다. FRB가 금리를 올렸던 1979년 그의 나이는 서른 둘, S&L의 모기지대출을 본격적으로 증권화시키기 시작했던 1981년 그의 나이는 기껏 서른 넷이었다. 퉁퉁하고 수염을 기른 영화 속 레이니어는 적어도 50은 돼 보인다.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는 건 아니다. 그저 '옥의 티' 정도로만 생각하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편 계속> 

 

  -----------------------------------------------------------------------------------------------------

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