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째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인구 고령화 여파로 수년 내 하락세로 바뀔 것으로 관측됐다. 따라서 가계부채 관리 방식을 기존 '총량' 규제에서 '차주 상환 능력'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미루 연구위원이 5일 내놓은 '인구구조 변화가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상승해 올해 1분기 90.3%로 세계 5위 수준을 기록했다.
김미루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증가는 기대수명 증가와 연령대별 인구 구성 변화 등의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즉, 기대수명이 늘면서 노후를 대비하려는 중·고령층은 금융자산을 선호한다. 이와 달리 주택 마련이 시급한 청년층은 주택 자산 수요가 높다. 이 과정에서 고령층이 자금을 공급하고 청년층이 이를 차입해 주택을 취득하면서 가계부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유럽연합(EU) 가입국 등 35개국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기대수명이 1세 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약 4.6%포인트(p)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청년층(25~44세) 비중이 1%p 감소하고 고령층(65세 이상) 비중이 1%p 증가하면 가계부채 비율은 약 1.8%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2003∼2023년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상승 폭(33.8%p)을 분석한 결과 28.6%p는 기대수명 증가에 의해서, 4.0%p는 연령대별 인구 구성 변화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위원은 향후 기대 수명 증가세 둔화와 고령화 현상 심화를 고려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수년 내 정점을 찍고 하락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오는 2070년에는 고령화로 인한 하락 효과(-57.1%p)가 기대수명 증가의 상승 효과(29.5%p)를 압도하게 된다. 그 결과 현재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27.6%p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김 위원은 "가계부채 비율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저축과 차입 행태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임의적인 총량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차주의 상환 능력 평가와 금융기관의 거시건전성 유지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의 예외 조항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불가피한 예외의 경우에도 엄격한 상환 능력 평가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과도한 정책금융이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수 있다며 보증 비율 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