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게"불이 나거나 사람이 많이 죽은 장소는 흉지가 아니다"고 강조
뒷산에 약수터 있고 달동네와 공존…도둑들자 "취업 희망자 오라" 벽보
경찰 불러 도둑 찾고 현대조선소 입사시키며 "도둑에게도 새 기회"언급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정 회장 자택은 산자락 꼭대기에 있다. 넓기는 하나 화려하지는 않다.
이전에는 '청운 양로원'자리였다. 어느 날 이 양로원이 매물로 나왔다. 처음에는 건너편에 살던 모 건설회사 사장에게 매수를 권했는데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간 곳이라 재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정 회장이 비서실 직원에게 급히 매수 하라고 지시했다. 의아해하는 직원에게 "불이 나거나 사람이 많이 죽은 장소는 흉지가 아니다"라고 했단다.
정 회장은 양로원을 매수한 뒤 현대건설 불도저로 건물을 모두 밀어버리고, 번듯한 주택을 새로 지었다.

이후 현대그룹이 욱일승천하며 대그룹으로 성장한 배경에 이 집이 있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 자리가 사실은 엄청난 명당이라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풍수에 조예가 깊었는지, 아니면 타고난 눈썰미가 뛰어났는지 모를 일이다.
정 회장이 명절 때마다 할머니와 우리 가족을 초대해서 청운동 자택에 여러 차례 가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마당에 늠름하게 놓여있던 큰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바위에는 한자로 된 여러 글자가 새겨있었는데 무슨 뜻인지 항상 궁금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나의 언론사 동료였던 이경재 북일 학원 이 사장에게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터는 양로원 이 전에 이 이사장의 외증조부가 1930년대까지 살던 집터였다.
본관이 인동(仁同) 장(張)씨, 호는 남거(南渠)인 외증조부가 자리 잡은 명당으로 볕이 잘 드는 양산(陽山)에 '경개 좋은 곳에 둘러싸인 곳'이라는 뜻의 동천(洞天)을 따와 '양산동천(陽山洞天)'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집을 지은 뒤에는 택호(宅號)로 '조용히 사는 곳'이라는 뜻의 '유거(幽居)'를 따와 '남거유거(南渠幽居)'라 지었다.
이들을 각각 예서와 해서로 쓴 뒤, 그 글씨를 마당 큰 바위에 새겨놓았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들으니 항상 궁금해했던 글자들이 '양산동천'과 '남거유거'였고,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게 이해됐다.
자택과 관련해서 정 회장의 배려심과 안목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자택 뒷산에는 약수터도 있고, 달동네도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워낙 집에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던 터라 큰 피해는 없었으나 외부인이 침입한 사실에 온 집안이 놀랐다.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난리였으나 정 회장은 조용히 뒷 산에 벽보를 한 장 붙일 뿐이었다. '취업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무교동 현대 사무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수십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정 회장은 미리 경찰을 불렀고, 그중에서 도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정 회장의 이런 행동은 순전히 도둑을 잡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지원자 중 실력 있는 사람을 합격시키는 동시에 범인도 함께 울산 현대조선소에 입사시켰다. 도둑을 현대 직원으로 채용한다고?
주위에서는 정 회장의 이런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앞으로 도둑은 또 들어올 수 있다. 자칫하면 사람을 해코지할 수도 있다. 이런 불상사를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며 도둑에게도 새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혜안과 넓은 마음씨에 감탄만 할 뿐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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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