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인재가 버려져 있는 것은 임금의 수치고 공적으로 그 허물 덮을 수 있어"옹호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 조선 제4대 왕 세종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해 그의 치세에 이뤄진 굵직한업적만 꼽자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오죽하면 '대왕' '성군(聖君)'이라 할까.
『조선의 정치가 10인이 본 세종』(박현모 지음, 푸른역사)은 그 세종의 진면목을, 황희, 허조, 정조 등 10인 시점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통치술, 외교, 인간적 면모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 1인칭 서술 형식이어서 자못 흥미롭다. 그만큼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데 눈길이 간 것은 세종의 용인법(用人法)이다.
세종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근 20년간 정승으로 보필한 황희를 빼놓을 수 없다. 한데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황희는 통념과 달리 문제적 인사였다. 모함에 빠진 선비를 위해 변론한 용기 있는 관원, 대기근 때 강원도 백성을 구해낸 유능한 관리, 침중하며 총명이 뛰어난 재상이면서 난역을 꾀했던 박포의 아내를 자기 집 토굴에 숨겨 놓고 간통을 했으며, 매관매직을 통해 재산을 모은 부패한 관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건 실록에 적힌 이야기란다.
한데 세종은 황희를 중용했다. 그것도 오랫동안 원래 왕위 계승권자였던 형 양녕대군을 지지했음에도 말이다. 세종의 심중은 '능력 우선' 한마디로 요약된다.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라고 생각했으며 "공적으로 그 허물을 덮을 수 있다"고도 믿었다.
아비가 외국인이고 어미가 기생이라는 이유로 버려질 뻔한 장영실을 호군(護軍)으로 발탁해 혼천의와 자격루 등을 제작하게 했고 "사람됨이 모질고 팩하며…동료들이 모두 원망하고 미워하였다"는 안숭선이 함길도사로서 죄를 범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황희의 천거를 받아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지신사로 삼기도 했다.
1447년(세종 29)에는 과거시험에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을 사람을 들여 쓰고 내치는 법"에 관해 직접 출제하기도 했다. 이때 훗날 이조판서 등을 지낸 강희맹은 "적합한 자리에 기용한다면 누구라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며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棄短錄長]이 인재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는 답안으로 장원급제를 했다.
그런 강희맹도 재주가 있더라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인재로 "재물만을 탐하고 여색을 밝히며, 끊임없이 재물을 긁어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어질지 못하고 예의가 없으며 정의감이 없는 자"를 꼽았다. 정의를 해치고 민심을 순박하게 하는 데 독충과 같은 존재라는 이유에서였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처럼 어느 조직, 어떤 리더라도 사람 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책에 나오는 이런 말 한 번쯤 곱씹어보면 어떨까. "역대 왕조는 그 수명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지만, 모두 하나같이 말엽의 임금이 사람을 잘못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기 전 한명회를 만났을 때 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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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