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8 08:25 (월)
'강승희 판화' 수행하듯 '비움의 나래' 펼치다
'강승희 판화' 수행하듯 '비움의 나래' 펼치다
  • 이코노텔링 고윤희 기자
  • yunheelife2@naver.com
  • 승인 2025.07.28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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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지는 도화지 위에 ' 수묵화의 정적 ' 구현해
반야심경을 3천번 쓰며'절제의 마음 근육' 단련
내년 퇴직…"작품 들고 나갈것"세계 이륙 채비
강승희 화백은 수행하듯 동판화의 세계를 수묵화의 경지로 승화시킨 '정적의 마술사'다. 그가 평생 화두로 삼은 '새벽'은 그래서 그의 '지독한 절제'가 낳은 산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는 도화지를 비우고 또 비우고 있다.

작가는 수행을 해야 할까. 국내 대표적인 동판화 작가인 강승희 화백이 여는 작품 세계는 늘 고요하다. 절간같다. 서양미술 기법인 동판화를 단출한 '수묵화'로 승화하는 힘은 침묵인 것인지 요란한 구석을 찾을 길 없다.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그가 40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짊어진 '새벽'이란 화두 역시 낯설지가 않다. 그는 왜 새벽에 집착할까. 아니 천착할까. 이 궁금중에 대한 단서 한 올이 있다.

강 화백은 '섬 소년'이다. 제주 출신 그가 대학때 접한 '동판화'는 신세계였다. 사고무친 신세였던 그를 붙잡아 섬처럼 가두었다. "밤샘을 해도 지치기는 커녕 작품에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창밖을 보면 새벽이 오고 있었다"

강 화백 작업실이 있는 김포 주변에서 포착한 소나무를 동판 위에 올렸다.
버들가지의 농담이 절묘하다.

꼬박 밤을 소비한 그 앞에 펼쳐진 새벽 풍경은 그의 '화폭'이 됐다. '화려한 밤'의 허망한 모습을, 때론 도회지 뒷골목의 음습한 장면을 동판 위에 긁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무겁다는 평을 얻기도 한다. 10년 전에는 돛단배 한 척을 하얀 백지위에 덩그러니 놓는 등 '고독의 웅장함'을 역설적으로 그려냈다. 섬 소년의 '지독한 외로움'을 잉크에 묻힌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도화지가 점점 비워지고 있다. 소재가 작아졌다. 한줄기 가느라한 선이 도화지 위에 아슬아슬 걸려 있다. 마주보고 달리는 평행선이 결국 만나는 소실점 처럼 될지도 모른다. 눈 덮인 백두산을 묘사한 작품은 선인지 그림인지 경계선에 서 있다. 결국 그가 찍어 온 백두산 가장자리 사진은 빼닮은 판화를 낳았다. 절제미가 눈(雪)이 됐다.

"채움보단 비움에 더 고심한다."

그가 내비친 작품 철학이다. 비울려면 웬만한 '마음 근육'가지곤 힘들다. 강화백이 뜻밖의 말을 했다. "반야심경을 한자로 3천번 썼다." 3000이란 숫자가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 단계 건너가려면 내야 하는 통과세인지도 모른다. 성철 큰 스님은 3천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만나주지 않았다. 어려움도 슬쩍 고백한다. "육체적으로도 힘든 작업이다. 그냥 좋아하면 어렵다. 미쳐야 작품이 겨우 숨을 찾는다."

눈 덮인 백두산 풍경을 담은 판화
작가가 찍은 백두산 사진

하안거에서 스님이 용맹정진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새상사 결과물만 보일 뿐 그 과정은 언제나 소외되기에 그림만 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 화백은 "이젠 소재도 멀리 가서 찾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7월16일~ 30일 · '새벽, 여백을 열다')에 내놓은 소나무와 댓잎, 버들가지는 그의 작업실이 있는 김포 주변에서 포착했다.

강승희 화백은 판화 부문에서 받아야 하고 부러워할 만한 국내외 상은 거의 휩쓸었다. 일찌감치 오카야마 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1991),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1991),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1998) 등을 손에 넣었다. 그런 명성을 안고 워싱턴, 도쿄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일본 와카야마 근대미술관, 중국 흑룡강성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 기관 소장품이 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곧 그의 '발목을 잡았던' 강단에서 해방된다. 30년 넘게 추계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는 강 화백은 내년 은퇴한다. 다만 학교란 공간에서만 한발 물러나는 것이다. "(작품을)들고 나갈 것이다. 학사 일정이 하고싶은 일을 가로막았었는데 그 모두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말을 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폈다. 그의 눈과 마음은 이미 미국, 유럽 미술계로 기울고 있다. 그를 옭아 맨 판화가 그를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할 태세다.

강 화백은 고교 시절 두 분의 훌륭한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를 찾아' 뭍에서 온 '섬마을 선생님'이다. 그 분들은 당시 섬 학교에겐 다소 '과분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인천 미술계을 이끈 강광 전 인천대 부총장과 서양미술사학회 학회장을 지낸 박성은 이화여대 명예교수.

"단지 미술 테크닉을 배웠다기 보단 미술이 어쩌면 나를 높고 넓은 곳으로 이끌 것이란 꿈을 꾸게 했다." 그 꿈은 현재완료형이 아닐 것이다. 썩혀야 진정한 밀알이 되는 것처럼 강 화백은 동판이란 그의 작품 세상을 썩힐(腐蝕) 것이다. 글쓰는 이에게 부심이 산통이듯 그에게 부식은 천형이자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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