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현 전 SK회장(98년 작고)은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을 도와 SK그룹을 일으켰다. 오늘날 SK 중흥의 포석을 놓았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자신을 ‘창업 1.5세대’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기에 현대,대한항공 등 형제간 동업형태의 협업이 있었던 그룹의 행보와는 다르다. 나중에 형제들이 분가하거나 독립하는 수순을 밟은 것과 비교하면 SK그룹 역사에서 최종현 전 회장이 차지하는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종현 전 회장은 창업회장이 47세를 일기로 타계(1973년 11월 15일) 하자 9일만에 SK 전신인 선경그룹을 통괄하는 사장 자리에 올랐다. 선경직물에선 회장직을 맡았다. 44세였다.그리고 두 달 뒤 형님의 ‘경영 유훈’을 떠 올리면서 형제간 ‘경영 동행’에 대한 단상을 일간 경제신문에 기고해 당시 재계의 눈길을 끌었다.

갑자기 회사를 이끄는 부담과 포부를 밝히면서 형제간 ‘17년 동행’을 추억했다.컬럼의 제목은 ‘형제’(兄弟)였다. 최 회장은 이 기고문에서 형제가 같이 사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래도 형제간에 공과 사를 구별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창업회장의 슬하 3남4녀와 자신의 2세인 2남1년을 합해 5남5녀를 훈육하고 인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더 (경영을) 잘해 주위 사람의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는데 동감이고 그게 바로 형님 회장의 유훈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고 기고를 갈음했다.
이 기고에 쓰인 최 회장의 다짐은 그대로 실천에 옮겨졌다. 그가 그룹을 운영한 25년동안(1973년∼1998년)동안 SK는 정유와 통신이라는 양대 주력 사업군을 발굴해 안정시켰다. 이 때 최회장을 좌우에서 도운 이가 바로 당시 김항덕 그룹 부회장과 손길승 경영기획실 실장이다. 특히 최 회장은 손 실장을 가리켜 “손 실장은 부하직원이 아니라 사업동지”라며 아꼈다. 실제로 최 회장은 자신이 단전호흡 장소로 손 실장을 불러 늘 같이 수련하기도 했다.
또 유공(지금의 SK이노베이션) 인수와 통신사업 진출에는 동감하면서도 진출 방식을 놓고 서로 다른 이견을 나눌 정도로 허물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자 손 실장은 최태원 회장으로의 그룹 승계 구도를 마무리하고 안정화시키는데 핵심역할을 했다. 지금도 SKT 명예회장으로 있으면서 최태원 회장의 자문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최종현 회장은 회장자리에 오른 직후 화학과 섬유사업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사업계열화 구조를 완성시켰다. 이를 위해 인재사냥을 게을리지 않았다. 인재를 고르는 선구안과 사업을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남달랐다. 그는 공·사석에서 기업사냥보다 인재사냥에 자신의 경영활동의 절반 이상을 썼다고 자부했다. 80년대 초반 선경이 내놓은 ‘스마트 학생복’처럼 그는 스마트한 인재를 기르는데 사재도 털어 넣었다.

그가 당시 MBC 장학퀴즈의 ‘평생 광고 스폰서’를 자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최회장의 장학 혜택을 받은 두 대학교의 총장은 최근 최회장의 20주기(8월24일)에 맞춰 최회장을 추억하는 기고를 했다. 최종현 회장은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웠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나와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지난 44년 동안 747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장학혜택은 받은 학생은 3천700명이 넘는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곧 고인의 유지를 계승 발전하기위해 1000억원 을 들여 ‘최종현 학술원’을 세우기로 했다. 학술원은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최태원 SK 회장이 선대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주기 기념식 현장에서 직접 제안해 이뤄졌으며 아시아 최고 싱크탱크로 육성할 방침이다.
최종건 회장이 창립한 SK는 최종현 회장에 의해 업그레이드됐고 최태원 회장이 내세운 미래 첨단산업 쪽으로 또 한번의 턴어라운드를 예고 하고 있다. 그 새 재계랭킹 10위에서 5위로, 다시 빅3로 거듭나는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발 SK혁명은 사실상 지금부터다. 최 회장은 10월 4일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신 공장 준공식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즘은 땅이나 공장이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빅데이터가 돈이 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