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파리 귀환'에 찬사 보낸 佛신문이 종종 '권력의 시녀'로 거론
나중에 허구로 밝혀졌지만 그런 '신화' 먹힐 만큼 '언론 불신' 사례로 꼽혀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어떤 의미로든 세상이 바뀐다는 이야기겠다. 자연히 언론의 논조에도 변화가 있을 터이니 이를 지켜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것이, 그 유명한 프랑스 신문 『르 모니퇴르 유니베르셀』의 참담한 일화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데 이어 오스트리아가 중심이 된 연합군에 잇달아 패하면서 1814년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섬으로 추방됐다.
명색은 '공작'이었지만 실상은 '귀양'이었다. 그랬던 나폴레옹이 영국의 묵인 아래 1815년 2월 26일 엘바섬을 탈출한다. 그리고는 한 달이 채 못 돼 당당히 파리에 입성한다. 그 과정을 보도한 당시 프랑스 유력지 모니퇴르의 눈부신 논조 변화가 언론을 비판할 때 늘상 등장한다.
흔히 이야기되는 '전설'에 따르면 '감시자'란 뜻의 모니퇴르는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처럼 권력의 향배에 따라 눈부시게 변신했다. "식인귀, 소굴을 빠져 나가다"(3월 9일 자), "코르시카의 아귀(餓鬼), 후앙만에 상륙"(3월 10일 자)에 이어 나폴레옹이 파리로 접근하는 동안 1면 머릿기사에서 나폴레옹을 '호랑이' '괴물' '폭군' '찬탈자'로 불렀다. 그러나 루이 18세가 파견한 반란 진압군의 총구 앞에 서서 "병사들이여, 너희들의 황제가 여기 있다, 어서 쏴라!"라고 호기롭게 외친 나폴레옹에게 토벌대마저 총구를 거꾸로 돌리는 등 대세가 기울고 나폴레옹 군이 파리로 접근하자 모니퇴르지는 재빨리 변신한다.
"나폴레옹은 내일 파리 성벽에 이를 듯"(3월 20일 자)이란 중립적 표현이 급기야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3월 21일 자)로, 다시 "황제 폐하가 충성스러운 백성들의 열렬한 찬송 속에 황궁에서 지난 밤을 보냈다"(3월 22일 자)로 표변했다.
한데 언론의 비굴한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적 일화로 드는 이 이야기가 허구란다. 우리 언론의 현실을 짚고 대안을 모색한 『언론본색』(양상우 지음, 인물과사상사)에 따르면 이 일화는 작자 미상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2020년 기자 출신의 역사연구자 데이비드 몽고메리가 당시의 모니퇴르 지면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런 제목의 기사는 전혀 실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 초기에는 관련 보도가 없다가 탈출 열흘 뒤인 3월 7일 자에 "나폴레옹이 바르에 무력 진입함에 따라 반역자로 선포한다"는 루이 18세의 성명이 실렸을 따름이고 이후에도 정부 측 대응을 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모니퇴르지의 논조가 변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200년 가까이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부끄러운 언론의 상징으로 거론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결론짓는다. 뭐, 어쨌든 그런 '신화'가 먹힐 만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만치 않은 증거로 꼽을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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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