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서 '발설지옥'에 액센트 주는것 같은 느낌 줌으로써 흥미 더해

#요즘 인기 TV드라마 가운데 저승을 다룬 게 있다. 80세의 모습으로 천국에 도착한 여주인공이 젊어진 남편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현생 초월 로맨스 판타지다.
이승에서 '일수 아줌마'였던 여주인공이 천국에서 소소한 죄를 짓고 다시 지옥으로 가는데 이 대목에서 일반인한테는 낯선 지옥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주 센세이셔널하게 그려져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 누구라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우리네 아니던가. 그러니 나부터 그동안의 삶을 곱씹어 보며 스스로를 드라마에 대입해보게 되고, 한편으론 모골이 송연한 반성을 하게 된다. 같은 시간대 비지상파 프로 가운데 시청률이 1등인 까닭도 여기에 있으리라.
#불교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을 지옥이라 하는데 본디 명칭은 나라카(Naraka)다. 한자로는 '나락(奈落)'이라 쓰는데 나라카의 음차이다. 팔리어로 된 '부파불교(部派佛敎·초기불교: early buddist schools)'의 경전인 <맛지마 니까야> 중 '데와두따 숫따(Devaduta Sutta)'에서는 '내리막길'을 뜻하는 '니라야(Niraya)'라는 이름으로 초창기 불교 세계관에서의 지옥에 대한 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 즉 16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여긴다. 하지만 팔열팔한 지옥은 최종단계의 지옥이며 심판을 받는 도중에도 각 관문마다 지옥이 구비돼 있다고 한다. 팔열, 팔한지옥 전에 먼저 저승 시왕(十王)에게 심판을 받는다. 죄가 덜한 자는 죽은 지 49일 동안 명부시왕(冥府十王ㆍ그냥 '시왕'이라고도 함) 중 7명에게 심판을 받고, 죄가 많이 있다면 죽은 지 100일, 1년, 3년째 되는 날에 각각 다른 3명에게 심판을 받는다. '전설 따라 삼천리' 등을 통해 나름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 (閻羅大王)'은 제 5왕으로 '발설지옥(拔舌地獄)'을 관장한다.
이곳은 타인에 대한 험담을 많이 하거나 거짓말을 계속하는 죄인들이 가는 지옥으로, 죄인을 형틀에 매달아 혀를 뽑아내고 몽둥이로 짓눌러 넓고 얇게 편 다음 소가 밭을 갈듯이 쟁기로 혀에 고랑을 파 고통을 겪게 한다. 구두쇠(守錢奴)는 '도산(刀山)지옥'으로 가 맨발로 끝없는 칼날을 밟고 걸어가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도둑질을 하거나 빌린 것을 갚지 않은 이는 '화탕(火湯)지옥'에서 용암, 황산, 똥물 등이 끓는 가마솥에 삶아지고, 이밖에 강력범은 '독사(毒蛇)지옥', 악덕상인 및 사기꾼은 '거해(鉅骸)지옥', 불쌍한 이웃을 내 몰라라한 냉혈한은 '검수(劍樹)지옥', 패륜아, 불효자는 '한빙(寒氷)지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극강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왕지옥에 가는 이는 그나마 '경범죄인(?)'에 해당한다. 그러니 받는 형벌도 뒤에 설명하는 지옥들에 비해선 약과다. 시왕의 재판을 받는 영혼은 '대규환(大叫喚)지옥'까지 가고, 재판도 안 받을 정도로 악업을 많이 쌓은 영혼은 '초열(焦熱)지옥'이하로 떨어진다. 시왕전 심사를 거치면서 시왕지옥 해당보다 죄가 크면 팔열(八熱), 팔한(八寒)지옥에 떨어진다. 각각의 지옥은 각자 전문적으로 다루는 죄목들이 있다. 개중에는 '술값 바가지를 씌운 죄'라든가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사람을 해치게 한 죄'를 심판하는 곳도 있을 정도. 후자는 요즘으로 치면 음주운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시왕 지옥의 마지막 심판인 '전륜대왕(轉輪大王)'의 심판을 모두 마쳐 육도윤회(六道輪廻)의 길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죄가 남아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지옥문을 통해 '팔열지옥'으로 가게 된다. 한마디로 '불지옥'을 가리키는 팔열지옥은 이름부터 요상한 ▶등활(等活)지옥▶흑승(黑繩)지옥▶중합(衆合)지옥▶규환(叫喚)지옥▶대규환(大叫喚)지옥▶초열(焦熱)지옥 ▶대초열(大焦熱)지옥 ▶아비(阿鼻)지옥 등 여덟 곳으로 그곳들의 실상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상상을 초월한다. 중생들한테 극도의 경계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런 것이려니 해도 차마 글로도 옮기기 거북할 정도다. 만약 심의가 있다면 당장 삭제지시를 받아 마땅한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불리기도 하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의 설명을 보면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싣고 가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창을 달궈 죄인의 몸을 꿰어 통째로 바베큐를 만들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 또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혹형도 이뤄진다.'는 식이다.
여기에다 '얼음지옥'인 팔한(八寒)지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독하기 짝이 없는 팔열지옥 중 가장 중죄인 중생들이 가게 되는 아비지옥보다 더한 죄를 저지른 중생들이 가는 지옥이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랴.
#그런데 불경에서 '문자'를 통해 전해지는 지옥의 끔찍함이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지만 드라마에서 접하는 지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의 피의 피… 피도 안 된다. 첨단CG 등으로 리얼리티가 현실 같은 체험을 안겨주며 공포를 전한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확인한 지옥의 실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절도와 살인, 사기와 거짓, 불륜과 학교폭력 등 이승에서 자신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형벌과 고통이 따르는 곳이어서 살면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죽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통쾌하면서도, 그 모습을 통해 각자의 삶과 현실을 돌이켜보고 절로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지옥 전체를 관리하는 센터장(長) '염라'는 말한다. "지옥에서는 지은 죄를 숨길 수 없다!", "죽어도 죽을 수 없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끔찍한 곳,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드라마에선 죄와 벌을 심판하는 방식도 자동화돼 있었다. 계산대에서 얼굴에 바코드 기계를 대기만 하면 각자의 죄목이 확인되고, 그에 맞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저절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발설지옥'에 액센트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줌으로써 흥미를 더 한다. 발설지옥은 다름 아니라 정치인과 사이비종교인, 악덕 변호사가 주로 가는, 즉 말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나! 이와 함께 '보이스피싱범'에게는 불법으로 사기 친 금액의 1원에 1㎝ 씩 혀를 자르도록 하는데, 혀가 계속 자라도록 하고 자르기도 계속 하는 설정에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또한 '악플러', '악질유투버'는 발설지옥, 초열지옥보다 더 한 '신(新)지옥)'으로 간다는 설정을 했는데 새로운 지옥을 발명해야 할 정도로 악플 등의 폐해가 얼마나 심하고 해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했다.
#어떤 별에 국호(國號)가 '민주'인 왕국이 있었다. 제 1왕, 제 2왕, 제 3왕이 각각 '용산궁', '여의궁', '서초궁'에 주재하며 권력의 정립(鼎立)아래 나라를 운영하다 제 3왕과 동급인 왕을 한 명 더 늘려 북천궁에서 '대전(大典)판정'업무를 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이른바 '전국구 타짜'가 있었다. 워낙 유명한 노름꾼이라 웬만한 동네 강아지도 알 정도로 짜 했다. 손기술이야 이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익힌 듯 말이 필요 없는 최(最) 극강이지만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신행술(身行術) 또한 무비(無比)의 도사급이어서 별명이 '그림자'였다. 그런데, 그가 포도청에 잡혔다. 아는 사람들과 어디 놀러갔다가 단체로 박은 사진이 문제였다. 그가 선수로 뛰는 판에선 보안을 위해 자기들끼리 만의 모자와 복장이 있는데 그게 꼬투리가 됐다. 해외원정 판에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단체사진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는 법인데 천하의 그림자 선생도 해외라 일순 정신 줄을 놓았던지, 아뿔싸! 선수차림으로, 그것도 다른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남긴 것이다. 사실 그림자 선생의 명함 상 직업은 세 치 혀로 나불대 먹고 사는 세객(說客)이다. 워낙 '구라빨이 쎈' 덕분에 날고 기는 놈들이 널린 이쪽 '세상'에 얼굴을 디민 지 불과 얼마 안 돼 붕당의 수괴(首魁)를 꿰찼다. 그의 특장은 뭐니 뭐니 해도 언제 어디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후흑술( 厚黑術). 타고 난 천성이라 그런지 뻔뻔하기가 공기처럼 천연스러워 상대를 속이고, 주위를 속이고, 온 백성을 속인다. 끝내 자신조차 속임수를 진짜로 여기는 듯한 경지이니…. 가히 호접몽(胡蝶夢)의 주인공인 장자(莊子)급이다. 이 같은 천자(天資)는 그로 하여금 '본캐'인 타짜의 세계에서도 지존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하는 밑천 중 밑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캐'의 세계에선 '후흑 선생'이 별호다.
그런데 한순간의 해이(解怡)로 포졸에 잡혔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그것도 그토록 믿었던 선수의 배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고 그놈을 잡아 회를 쳐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그는 예의대로 태연한 척했다. 아니, 태연해야 했고, 태연했다. 사진을 들이대며 "네 죄를 알렸다!"하는 포졸한테 "뭔 일 있냐?"는 대꾸로 사오정 연기를 한다. 괘가 난 포졸이 "똑똑히 보라!"며 사진 중 그가 선수들과 나란히 있는 부분을 확대해 보여주며 쪼아대자 이번엔 한술 더 뜬다. "마치 노름을 한 것처럼 사진을 조작했다!" 양쪽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사또가 "네 이눔 그림자야,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뿌렁이냐!"고 호통을 쳤다. 이에 그림자는 은자(銀子)를 두둑이 들려 관찰사에게 사람을 놓아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이윽고 관찰사가 말했다.
"그림자가 명시적으로 '노름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거짓뿌렁이 아니다!"
노름꾼을 잡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잡아떼는 놈을 노름 정황증거로 들이댄 게 사진인데 관찰사는 노름을 했는지 여부는 꿀꺽한 채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무죄"라고 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뿔따구가 머리끝까지 치민 포도청은 시말(始末)을 자세히 적어 서초궁 왕한테 상소하곤 "현명하고 공명정대한 처분을 바란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서초궁 왕은은 지체 없이 정승 판서들을 모아 어전회의를 열었고, 예외적이다 싶을 정도로 잽싸게 평결을 공포(公布)했다.
"노름을 한 게 사실인데도 듣는 이들로 하여금 노름을 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도록 말한 게 맞다. 고로 유죄!"
즉시 난리가 났다. 후흑 선생의 추종자들이 눈이 뒤집혀 '전자말보(轉字末報)'통해 경쟁적으로 막말을 뱉어내며 선동을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자는 "이것들 봐라!"라며 곧 손 볼 것처럼 어전회의를 공격하고, 또 다른 자는 어전회의를 주재한 서초궁 왕마저 내쫓겠다며 탄핵 운운한다. 하기야 탄핵이야말로 후흑과 그 똘마니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고 툭하면 휘두르는 좌도술(左道術)의 최고 비급(祕笈)이 아니던가. 어전회의 장소인 서초궁 주변은 이미 그 일당들의 악다구니에 쩌들어 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북촌궁에서 있었던 또 다른 어전회의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이 환호작약(歡呼雀躍) 난리를 치던 그들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백성 된 자로서 어전회의 결과조차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무도함이라니. 역사는 묻는다, 너희에겐 철면피 같은 손바닥 뒤집기, '후흑의 여반장(如反掌)'이 시대정신이냐고.
#사람이 죽어 저승에 들어서면 입구에 밝은 거울이 설치된 곳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 이 거울에는 사자(死者)가 이승에서 한 착한 일과 악한 일이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게 비춰져 보여준다. 그래서 이곳을 명경대(明鏡臺)라고 한다. 그가 생전에 착한 행업(行業)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았다면 즐거움만 넘치는 천국, 즉 극락(極樂)으로 가고, 반대로 이승에서 나쁜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지었다면 영락없는 지옥행으로 말할 수없는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명경대의 거울 대신 이승 전체를 커버하는 CCTV를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사자의 이승 행적을 낱낱이 파악하는 것으로 나온다.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가 우스꽝스럽지만 참신하다. 판타지의 매력이다. 만약 우리의 후흑 선생이 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라도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심판을 받게 될까?! 그리고 그의 아해(兒孩)들은? 또 허튼 짓하다 쫓겨난 용산궁 왕과 '여사(女奢), 그리고 '찐'자 붙은 그 졸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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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다니다 1982년 중앙일보에 신문기자로 입사했다. 주로 사회부,문화부에서 일했다. 법조기자로 5공 초 권력형 비리사건인 이철희ㆍ장영자 사건을 비롯,■영동개발진흥사건■명성사건■정래혁 부정축재사건 등 대형사건을, 사건기자로 ■대도 조세형 사건■'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탄주범 지강현사건■중공민항기사건 등을, 문화부에서는 주요무형문화재기능보유자들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중앙청철거기사와 팔만대장경기사가 영어,불어,스페인어,일어,중국어 등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엔 초짜기자임에도 중앙일보의 간판 기획 '성씨의 고향'의 일원으로 참여하고,199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토종을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종자전쟁에 대비를 촉구하는 기사를 1년간 연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토종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 대한상의를 비롯 다수의 기업의 초청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2014인천아시안게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