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개인과 기업의 빚 가운데 절반인 약 1993조원이 부동산 관련 대출에 쏠려 있어 경제성장을 제한하고 금융 안정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3일 금융연구원과의 공동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부동산 신용집중 구조적 원인과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동산 신용(빚) 규모는 지난해 말 1932조5000억원으로 전체 민간(개인+기업) 신용의 49.7%를 차지했다.
여기서 부동산 신용은 금융기관이 공급한 가계 부동산대출(주택관련대출+비주택부동산담보대출)과 부동산·건설업 기업대출(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포함)의 합친 것이다. 부동산 신용은 2014년 이후 연평균 100조5000억원씩 불어났다. 2013년 말과 비교해 10년 사이 2.3배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부동산 부문 대출이 집중되는 원인으로 가계·기업의 부동산 투자, 금융기관의 이자수익 중심 영업, 부동산 대출 관련 자본 부담이 적은 규제 등을 꼽았다.
가계는 주택이 다른 자산보다 높은 장기 수익률을 보이자 레버리지(차입)를 동반한 주택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부동산 자산 비중(6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보다 10%포인트 넘게 높다.
기업 측면에선 부동산 업황이 장기간 호조를 보이면서 관련 기업 수가 늘어난 데다 부동산·건설업 특성상 초기 투자를 외부 자금에 크게 의존하면서 대출 수요도 급증했다.
은행은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은 수익구조에 맞춰서 안정적 부동산 담보 중심으로 대출을 확대하는 영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택 관련 대출은 기업대출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아 안정적 수익 확보에 유리하다.
정책 대출도 부동산 신용 쏠림의 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은행 주택담보대출보다 낮은 금리 수준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배제 등의 규제 이점이 정책 대출 수요를 늘려왔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한은은 대출이 계속 부동산 부문에 집중되면 자본 생산성 저하, 소비 위축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본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동산업에 신용이 집중될수록 전체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내외 충격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담보가치 축소와 채권 회수율 하락 등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나빠져 신용 공급이 줄고, 그 결과 민간 소비와 투자가 제약될 가능성도 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연구팀장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신용 증가세를 적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고,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 취급 유인이 억제될 수 있도록 자본 규제를 보완하고 생산적 기업대출 취급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