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모델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나와…1948년 속옷광고는 일부신문서 보이콧

현대인은 광고와 떠나서 살 수 없다. 다양한 플랫폼에 신기술이 접목되니 언제 어디서든 광고 공세에 묻혀 산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광고의 본질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지갑을 열게 하는 것.
자연히 갖가지 기법이 동원되었는데 그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성적 매력'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가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섹스어필에 기댔던 것은 아니다. 소설의 재미와 역사의 통찰력을 갖춘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김동규 지음, 푸른역사)에 따르면 광고 선진국이라 할 미국에서도 섹스어필 광고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0년 일이다.
JWT란 세계적 광고대행사를 키운, 역사상 최강의 광고 커플 레조 부부 중 아내 헬렌 랜스다운 레조가 만든 '우드버리 비누' 광고였다. 옅은 갈색 머리에 가슴이 파인 드레스 차림의 미인과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려는 젊은 남자가 등장하는데 헤드 카피 또한 "만지고 싶은 피부(The skin that you loved to touch)"였다. 우드버리 비누를 사용하기만 하면 광고의 여인처럼 남자들을 푹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는 바디 카피를 볼 것도 없이 분위기만으로 여성들의 눈길을 끄는 이 광고 캠페인 덕에 우드버리 비누 매출은 8년 만에 10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광고는 일러스트(그림)를 이용한 것이었으니 누드 모델을 등장시킨 최초의 광고는, 기업들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1930년대 초반 대공황기에 나왔다.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린 벌거벗은 여성의 뒷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캐논 밀스 타월 광고였다. 헤드 카피는 "타월이 말한다(Towel talks)". 뭘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빅 히트를 친 광고였다.
그래도 본격 섹스어필 광고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1948년 시작된 스프링스 밀스사의 속옷 광고였다. 남성 파트너와 춤을 추다가 살짝 턴을 하는 금발 미녀의 스커트가 위로 활짝 펼쳐진 그림에는 팬티를 입은 하체가 훤히 드러났다. 여성 언더웨어 회사의 광고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미국은 윤리적으로 보수적이어서 이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많은 신문과 잡지에서 광고 수정을 요구하거나 게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1949년에야 『리버티 앤 룩』이란 잡지에 두 번째 광고가 실렸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잡지 판매 부수가 껑충 뛰고, 전국에서 광고 복사본을 보내 달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광고주이자 제작을 지휘한 엘리엇 화이트 스프링스는 제1차 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전쟁영웅이자 프린스턴대학교를 나온 엘리트였기에 그가 지휘한 섹스어필 캠페인은 '대령의 성적 자극 접근(Colonel's sexually provocative approach)'이라 불렸다. 돈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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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