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투기 배후로 중개인 겨냥하자 중개인협회 "투기꾼 명단 발표"반격
문민정부 시절. 정치인 재산 공개 직후 국회의장이 사직한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어서였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가 부동산투기 배후로 부동산 중개인을 겨냥했다. 그러자 중개인협회가 "진짜 부동산 투기꾼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일이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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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본 쓴다 생각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시놉시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두 명에 대한 소개와 주요 장면 하나를 소개해 본다.
■ 등장인물
▶ A : 중견 소설가. 최근 수 년 동안의 부동산 '광풍(狂風)'을 보며 이를 주제로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값을 올려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부동산 카르텔'에 관심이 많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카르텔은 부동산 관련 기업과 정치인, 고위 공직자, 언론사 사주와 언론인, 은행가 등 우리나라 기득권층 대부분을 아우른다. 막강하고 은밀하며 부동산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사람들이다.
▶ K : 소설가 A의 선배. 미국 명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 서울 외곽에 칩거 중이다. 유복한 집 출신이라 생활 걱정은 없다. 수 천 권 책에 둘러싸여 책 읽고 텃밭 가꾸며 산다. 한 때 그가 쓴 경제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재야의 고수'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 "5년 간 다주택자 1000명이 4만1721채 집 사"

■ 주요 장면(1)
A가 K의 집을 찾는다. 자료 수집 중 궁금한 게 생겨서다. K라면, 답은 아니어도 힌트는 줄 것 같았다. 보통은 2층 테라스에서 소주잔을 기울이지만 날이 추웠다. 둘은 1층 식탁에 앉아 술잔을 나눈다. A도 K도 조금씩 취하고 있다. 사담(私談)이 지나자 A는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며 말문을 연다.
⊙ A="선배님, 이거 한 번 보시죠. 2024년 10월 21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인데요, '다주택자 상위 1000명, 무슨 돈으로 4만1721채 구입했나'라는 제목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조사한 것인데요, 제가 궁금한 건 제목 그대로입니다. 다주택자 1000명이 지난 5년 간 4만 채 넘게 집을 구매했다는 건데요, 쓴 돈이 무려 6조1500억 원이나 된답니다. 1위는 1158억 원을 들여 793채를, 2위는 1151억 원을 들여 710채를 샀다는 거예요. 이들은 진짜 누구고 돈은 어디서 났을까요?"
⊙ K="(꼼꼼히 기사를 읽은 뒤) 글쎄, 그거야 모르지. 이 기사만 갖고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겉핥기인 데다가 왜곡된 정보일 수도 있지."
⊙ A="그래서 답답한 거죠. 어떻게 보세요?"
⊙ K="무엇보다 난 이게 궁금해. 단순 순위 기사잖아. 1위, 2위, 3위는 다 다른 사람이라는 거지. 그런데 진짜 그럴까? 이들이 바지사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해 대형 빌라 사기사건 있잖아, 서로 다른 대규모 빌라 매입자 X와 Y가 알고 보니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거 아냐.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실제 소유주는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지. 실제로 배후가 드러나기는 했는데, 그게 다 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어.
그리고 이 기사는 '지난 5년 동안의 주택 구입자'에 대한 것이야. 이들이 그 전에 구입해 뒀던 집과 5년 동안 구입한 집을 어떻게 했느냐에 대한 정보는 없어. 예를 들어 1위 매입자의 경우, 기존에 이미 500채 집을 보유했을 수도 있잖아. 그럼 그는 새로 구입한 집 793채를 더해 집을 모두 1293채 보유할 수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구입한 집의 상당수를 고가에 이미 팔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정보가 전혀 없는 거야."
⊙ A="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구심이 생깁니다. 왜 속 시원히 명단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거죠. 아파트값 비싸 청년들 결혼도 안하고 나라가 망해가고 있잖아요. 이 투기꾼들, 세무조사에 자금 출처 조사해서 손 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 K="사람, 순진하긴. 그러다 세상 뒤집히면 어쩌려고. 자네가 책임질 거야?"
⊙ A="정말 세상이 뒤집힐까요."
⊙ K="<강남 1970>이라는 영화 봤을 거 아냐? 부동산 사기와 투기 뒤에 정권 핵심이 있다는 애기잖아. 물론 일부는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겠지만."
⊙ A="혹시 과거 사례 아시는 거 없으세요? 투기꾼 명단 발표했다가 난리가 났다거나…."
⊙ K="명단 발표는 모르겠고, 몇몇 유력 정치인이 투기꾼으로 의심받아 난리가 난 적이 몇 번 있었지. 잠간 있어 봐, 좋은 사례가 있어. (이 말을 끝에 그는 옆에 있던 노트북에서 뭔가 검색을 하고 프린트를 했다. '가족명의 전국에 땅 21만평' 제목의 1993년 3월 24일 자 《서울신문》 기사였다.) 여기 있네, 이거 봐봐."
⊙ A="(기사를 본 뒤 눈동자가 커지며) 와, 국회의장이네요."
⊙ K="맞아. 1993년 3월이니까 김영삼 정부 시절이지. 국회의원 재산 공개가 있었는데, 몇몇 의원이 문제가 됐어. 그중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P씨가 크게 걸렸던 거야. 특히 미성년 자녀의 이름으로 땅 투기를 하고 일명 '벌집'으로 불리던 서민용 임대주택 수 십 채를 갖고 있었어. 그래서 국민의 분노가 더 컸지. 결국 의장직은 사임했고."
■ 중개사협회, "투기꾼 명단 공개 하겠다"

⊙ A="그런데 너무 오래됐네요. 요즘 정치인하고 고위 공직자들, 재산공개 하잖아요, 그래도 문제되는 사람 거의 없고…."
⊙ K="더 재미있는 얘기 해 줄까? 노무현 정부 때야. 하도 어이가 없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그때도 집값이 엄청 뛰었지. 정부는 다양한 억제책을 썼지만 백약이 무효였어. 그러다 2003년 5월쯤이었을 거야. 정부가 집값 상승의 책임을 부동산 중개사에게 묻겠다며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어. 그러자 대한공인중개사협회가 성명을 냈어. '정치인, 고위공직자, 유명인들 중 투기꾼이 있다'며 '진짜 투기꾼이 누구인지 밝히겠다'는 것이었어. 중개사들이 정부를 겁박한 꼴로 비춰졌지. 정말 코미디 같은 얘기였다니까. 이후 일은 흐지부지 됐고…."
⊙ A="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같네요.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했잖아요."
⊙ K="맞아. 그건 진짜 최근 일이지. 2020년경이었을 거야. 그때도 집값이 너무 올랐잖아. 결국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 그런데 보니까, 청와대나 정부 고위직 공무원이 도마 위에 올랐던 거야. 야당에서는 대통령 가족에게까지 의혹을 제기했고. 지금은 어때? 이번 정부도 영부인과 그 가족이 의심을 받고 있잖아. 그거 보면 1970년대 이후 부동산 투기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고, 또 그 투기꾼들을 이긴 정부도 없었지. 아니, 그들과 싸운 정부가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 몰라. 다 한통속일 수 있다는 거야."
⊙ A="정말 화가 납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가능하지도 않았던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쨌거나 선배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정리가 좀 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 A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해 본다. 잘 하면 <강남 1970>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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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