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위임'인데 권리로 혼돈해 '마구잡이 결재' 부작용도

많은 기업이 조직 내 질서를 잡기 위해 다양한 규정을 마련한다. 특히, 그 중에서 "위임전결규정" 또는 간단히 "전결규정"이라고도 하는 이 규정은 회사 최고 경영자의 결정 권한을 각 본부별로, 또는 각 팀별로 중요도에 따라, 일일이 나줘 주는 회사 규정이다.
가령, 대표이사 명의의 외부 발송 회사 공문을, 일일이 사장이 결재하지 않고, 본부장이나 그 하위 부서장이 판단해서, 대표이사 직인을 찍을 수 있는 권한 등이 바로 회사가 만든 "전결규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전결규정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의사결정을 보다 빠르게 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그러나 실무 현장에서 이 규정이 기대했던 대로 운영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1. "전결규정"의 핵심, "업무 프로세스" 파악부터 시작해야
전결규정은 회사 내 보고 및 결재 업무 중 어떤 부분을 현업이나 차하위자에게 위임할지를 결정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수립하려면 회사 업무 전반의 종류와 결재 프로세스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이를 간과한 채, 서점에 있는 "규정집" 책에 나와 있는 형식적인 전결규정을 도입하고, 이후 발생하는 문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려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2. 금전 및 법적 사항, 신중한 접근이 필수
특히, 금전 계획 수립 및 집행, 대외적으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 공문 발송 등의 업무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무리, 전결규정이 마련되어 있어도 현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법적 책임은 "회사", 또는 그 대표자인 사장이 진다. 또한, 일단 현업에 결정 권한이 위임되면, 이를 다시 회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3. 예외 상황이 빈번해지는 현실
전결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규정내용이 "모든 상황"을 포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예외적"인 결정사항들이 속출하며, 이로 인해 결국 규정 자체가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다. 전결규정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경영진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4. "전결규정 = 권한위임이 아니라 권리"라는 오해
일부 부서에서는 전결규정을 "현업에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특히, 조직의 일관된 운영 원칙과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결규정은 오히려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각 부서의 이기주의로 비용낭비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령, 거래선 경조사 시 "회사 대표"명의의 경조화환을 보내는 권한을 각 부서에 위임했을 경우, 거래선 중요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보내, 화환비용이 과다 지불되기도 한다. 과거, 몇 년 전, 국내 모기업은, 각 본부의 경조화환비 집행 내역을 감사하기도 했다.
5. 전결규정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은?
전결규정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면서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이 충분한 업력을 쌓고 업무 프로세스가 체계적으로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최소 1,000명 이상의 규모를 갖춘 조직이어야 실질적인 위임이 가능하다. 셋째, 내부 감사팀과 같은 감시 기구가 존재해, 위임된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전결규정은 조직의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매우 크다.
결론적으로, 회사에서 "위임전결규정"을 만들 때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은 전결규정 도입 전, 업무 프로세스 분석과 체계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전결규정"의 장점인 의사결정의 신속성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임이 분명하지만, 그 전제가 무너지면 조직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독버섯"은 겉으로는 이쁜 버섯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치명적인 "독"이 숨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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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졸업 후 중앙일보 인사팀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년 이상 인사·노무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율탑노무사사무소(서울강남) 대표노무사로 있으면서 기업 노무자문과 노동사건 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회사를 살리는 직원관리 대책', '뼈대 노동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