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의 미담 알려지자 선경이 자금난 겪을 때 사채업자들이 자금 변통 앞장

우직스럽게 신용을 지킨 정도경영의 결과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부정축재처리법을 시행하면서, 박정희는 소위 우리나라 재벌이라는 기업인들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많은 기업이 부정축재 조사의 대상자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특혜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용과 정직을 무기로 삼은 최종건의 경영 방식은 박정희의 호감을 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72년 8월 3일, 정부는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른바 '8·3 긴급 금융 조치'를 단행했다. 주요 내용은 기업이 지닌 모든 사채를 동결해 낮은 이자로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채에 허덕이는 기업에는 큰 혜택이었고, 선경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8·3 조치'가 단행된다는 것을 미리 전해 들은 최종건은 오히려 힘든 은행 대출을 받아 당시 보유하고 있던 사채 5억 원 가운데 3억 원을 갚았다. 선경이라고 사채가 없다면 안 되겠기에 2억 원을 남겼을 뿐, 그의 마음은 한 푼도 남김없이 모조리 갚는 것이었다. 단순히 손익만을 계산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서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급할 때 사정하고 빌려 쓴 돈인데, '8·3 조치'를 기회로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의 미담은 널리 퍼져 선경이 자금난에 허덕일 때 사채업자들이 싼 이자로 먼저 자금을 변통해주는 결과로 돌아오기도 했다.
1973년 2월 <주간조선>이 '최종건 회장의 사장학'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다름 아닌 "남의 발등을 밟고 사업을 하지 말라."였다. 이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최종건의 철저한 신뢰와 신의의 정도경영은 선경의 대명사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최종건이 어려서부터 아버지 최학배 공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이후 그가 살아가는 근본 철학이 된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