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진 선장 "험한 뱃길을 총 33회 가는데 사고 대비해 보험 들자"고 제안하자 일축
정회장 "보험 생각했지.돈도 없었지만 보험 들면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할 거로 생각"

유명한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때 일이다. 공사 기간은 불과 36개월이었다. 정상적으로 공사를 한다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기간이었다.
10층 높이 철골 구조물을 울산조선소에서 제작해 바지선에 싣고 간다는 정 회장의 아이디어는 전문가들이 볼 때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동남아 해상, 인도양을 거쳐 걸프만까지 바지선으로 끌고 가는 계획은 그 자체가 무모한 거였다. 울산에서 주베일까지 1만 2,000km, 경부고속도로를 열 다섯 번 왕복하는 거리였다.
그걸 육상도 아니고 해상으로, 그것도 바지선으로 끌고 간다는 계획에 단 한 명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결정한 후에는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는 게 정 회장의 특기였다.
"건설은 즉각 결정해야 해.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어. 시간이 곧 돈이야."

결국 정 회장의 계획대로 진행이 됐다. 그러자 배를 끌고 가는 책임을 진 선장이 말했다.
"험한 뱃길을 총 33회나 가야 합니다. 반드시 해양 사고가 나게 돼 있습니다. 최소한 보험이라도 들어야 합니다."
배는 물론 선원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선장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자동차 보험도 당연히 들어야 하는데 보험도 들지 않고 1만 2,000km 해상을 운항하라는 요구는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그러자 정 회장의 대답이 이랬다. "그 돈이 어디 있냐. 보험료 아껴라." 지금 같으면 난리 날 일이지만 당시 70년대였다는 사실, 그리고 정주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결과론이긴 해도 만약 보험을 들었다면 주베일항 공사는 실패였다. 당연히 중간에 태풍을 만나고, 풍랑에 휩싸인 적이 많았다. 보험에 들어있으면 굳이 위험하게 모험할 이유가 없다. 조금만 위험해도 운항을 포기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보험이 없으니까 죽기 살기로 위험을 헤쳐나간 것이다.
정 회장이 나중에 고백했다. "사실 그것까지 생각하긴 했어. 돈이 없기도 했지만, 보험을 들면 오히려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할 거로 생각했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사실은 비판할 수 있으나 대단한 혜안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총 33회 중 딱 한 번 사고가 났다. 바지선에 연결된 줄이 끊어져 바지선이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사고가 났다며 난리가 났다.
없어진 바지선을 찾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철골 구조물을 찾아야 했다. 망망대해에서 사라진 바지선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했다.
정 회장이 대책회의실을 찾았다. "바지선이 어디로 갔을까?" "줄이 왜 끊어졌을까?"
질문이 네 차례 정도 이어지니 공대 출신 임원의 말문이 막혔다.
"당신 모를 줄 알았어." 그러더니 "내 생각에는 청소를 안 해서 배수구가 막혀서 그랬을 거야"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나 해류의 문제, 바람만 분석하고 있었으니까.
천신만고 끝에 바지선을 찾아서 조사해보니까 정 회장의 진단이 맞았다. 모두가 그의 혜안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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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