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 터지자 공사대금을 못 받을까 노심초사해
철수 보고를 받고 "깡통이라도 두드려라"며 공사 시늉 주문

정주영 회장은 동생 인영 회장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동 건설 현장에 진출한다. '돈이 있는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중동에는 '오일 달러'가 넘쳐나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1975년 바레인 발전소 공사 수주를 시작으로 78년에는 이라크 알주베 항 건설을 맡았다. 당시에는 이라크의 정세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웃 나라인 이란과 사이가 나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몰랐다. 따라서 다른 국내 건설사들은 눈치를 봤으나 정 회장은 과감하게 이라크에 진출한 것이다.
조마조마하던 일이 드디어 터졌다. 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현대건설은 현장 건설노동자들을 철수시켜야 했다. 당시 현장 담당자가 이명박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전쟁이 터졌습니다. 노동자들을 철수 시키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때 정 회장의 대답은 "철수하면 안 돼"였다. 전쟁이 터졌는데 철수하지 말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철수하면 공사 중단이잖아. 그러면 지금까지 공사에 들어간 비용을 하나도 받지 못해. 위험하니까 진짜 공사는 하진 말고, 계속 공사하는 척을 해." "공사하는 척을 어떻게 합니까?"
"가림막을 쳐서 외부에서 못 보게 하고, 안에서 빈 깡통을 두들기든지 해서 공사하는 것처럼 요란하게 하면 되잖아."
그때부터 현대건설 노동자들은 정말 위험할 때는 철수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와서 깡통을 두들기는 일을 반복했다.
전쟁 중에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정 회장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갔다. 남들이 안 하는 공사를 계속 수주해나갔다. 이라크의 초기 인프라 공사 중 현대건설이 참여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무려 8년 만에 전쟁이 끝났다. 미수채권 정산에 들어갔다. 현대 건설이 받아야 할 돈 중 50%만 받았다. 나머지 절반은 결국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결단이 없었으면 그 50%도 받을 수 없었다.
물론 매몰 비용(sunk cost,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실행한 이후에 발생하는 비용 중 회수할 수 없는 비용)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전쟁 발발 당시에 철수했다면 오히려 전체 피해액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긴, 8년이나 지속된 데 따른 결과론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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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