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2.5톤 무게의 돌 쌓는'피라미드 중노동' 많아 육체노동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강조
부모들은 자식이 뙤약볕 아래서 돌 지고 나르기 보다 실내서 일하는 직종 선택 하길 바라

의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초등생들을 위한 의대 진학준비반이 있다니 '전 국민의 의사화'가 걱정될 지경이다. 이는 결국 자식들의 안락한 삶을 바라는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이라 하겠는데 이런 현상은 21세기, 한국의 현상만은 아닌 모양이다.
"쓰기를 마음에 새겨라. 그것이 온갖 중노동으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테니…서기(書記)는 너를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켜줄 직업이다."
이건 기원전 2400년 무렵, 그러니까 무려 4천 년도 더 전에 고대 이집트의 한 서기가 아들에게 학교 수업에 집중하라고 타이르면서 했다는 이야기다. '유목민'을 키워드로 세계사를 바라본 『노마드』(앤서니 새틴 지음, 까치)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책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는 조직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범람하는 나일 강에서 농사를 의존해야 했기에 기근이 잦은 환경이었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밭을 가는 것이 필요했다.
뿐인가. 현대 건축술로도 짓기가 만만찮은 피라미드 건설이란 대역사(大役事)를 위해서도 조직화는 절실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2560년에 지어진 이집트 최대의 피라미드,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20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임금으로 빵과 맥주를 받는 '근로자'였는데 때로 임금 지불이 늦어지면 인류 최초의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해서 2.5톤 무게 사각돌 300만 개를 쌓아 만든 쿠푸의 대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미터에 이르렀으니 1311년 영국에서 높이 160미터의 '링컨 대성당' 첨탑이 지어지기 전까지 인류 최고의 건축물이란 기록을 유지했다.
이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선 최고권력자의 건축 의지를 구현할 설계, 인원 동원 및 관리, 재원 및 물자 조달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을 테니 요즘으로 치면 경영학 전반에 관한 지식과 체계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이를 위해 파라오를 정점으로 들이나 배에서 노동할 조직과 이를 관리할 관료제가 들어섰다. 사제, 서기, 회계 담당자, 세금징수원 등의 문자 그대로 '피라미드형' 지배구조가 탄생했다.
이처럼 계급이 분화되면서 자연히 서열이 생겼다. 자식이 뙤약볕 아래서 돌을 지고 나르기보다 실내에서 펜대나 끄적거리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 부모나 당연히 갖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니 앞서 이야기한 서기의 아들에 대한 당부에 공감이 가긴 한다. 주목할 것은 이런 가르침을 내린 아버지 또한 '서기'였으니 이미 이때부터도 '신분 세습'이 자리 잡았으리란 점이다.
그러니 '의대 광풍'이나 수업료가 월 2백만 원이 넘는다는 명문 영어유치원 진학을 위해 밤샘 대기를 한다는 부모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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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