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9:40 (수)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7) 힘 잃은 주식…'인지 부조화'는 없나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7) 힘 잃은 주식…'인지 부조화'는 없나요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11.14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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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여우가 먹고 싶은 포도를 따먹지 못하자 실패 원인을 '자기 합리화'
소비자나 주식투자자도 판단이 틀렸을때 잘못을 인정 않고 위안 받으려해

잔뜩 굶주린 여우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여우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먹을 것을 찾아 숲속을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여우는 서둘러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먹음직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침이 고일 정도였습니다.

포도는 무척 달콤할 것만 같았습니다. 여우는 포도송이를 따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뒤로 물러났다가 달려가 힘껏 뛰어올랐지만 포도송이에는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포도를 따려고 갖은 방법으로 애를 쓰던 여우는 결국 눈 앞의 포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우는 포도밭을 떠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흥 덜 익은 포도잖아? 아직 시큼해서 못 먹을 거야. 난 아주 잘 익은 포도만 좋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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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합리화하려 든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인지부조화에 빠진 여우의 자기 합리화= 여우가 포도를 못 먹은 것은 분명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그런데도 여우는 포도가 시큼할 것이란 이유로 포도를 단념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데 포도가 맛이 없을 거라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무능을 감췄습니다.

이 우화를 읽으면 여우는 교활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손가락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우처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합리화하려 듭니다. 이는 '인지부조화'가 원인입니다.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 혹은 신념과 현실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불안과 불편함을 겪게 되는데,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때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줄이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자기 태도나 생각을 바꿈으로써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난 후 그 선택이 잘못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든 그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믿으면서 끝까지 내가 옳았다고 우기는 것이죠.

가령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사람이 '술은 건강에 해롭다'는 기사를 봤다면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사람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선 술을 끊거나, 적당한 음주는 몸에 긴장감을 줘 건강에 좋다는 긍정적 인지를 추가하거나,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술자리는 필수라는 식으로 사고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선 세 번째 방법으로 합리화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이같은 인지부조화를 최초로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온 페스팅거입니다. 그는 1957년 스탠퍼드대학 학생들에게 실패에 실을 감는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을 수행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실패 감기를 마친 학생들에게 이 실험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학생들 중 A집단은 거짓말의 대가로 1인당 20달러를, B집단은 1인당 1달러의 보상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A집단은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는 대가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실패 감기 작업은 정말 재미없었다고 사실대로 고백했습니다. 반면 B집단은 1달러라는 낮은 보상을 받고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이 실험이 정말 재미있었다는 쪽으로 믿음을 바꿔 버렸다고 합니다. B집단은 자신이 스탠퍼드 학생으로서 고작 1달러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 실험이 실제로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인지부조화 상태를 보인 것입니다.

페스팅거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행동에 참여한 보상으로 사소한 것을 받을수록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입니다. 실제로 6·25동란 때 중국군에게 포로로 잡힌 미군들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공산주의를 미화, 찬양하고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글을 쓰라고 했는데, 종전 후 상당수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중국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헐값에 자신을 팔아넘긴 게 아니고 정당한 논리에 의해 설득당해서라고 합리화했다고 합니다.

패스팅거는 인지부조화 이론을 개인이 경험과 현실의 일치를 추구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의 인지나 행동을 다른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 불일치를 해소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사람들에게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입니다. 페스팅거에 따르면 다음 네가지 방법으로 부조화를 줄일 수 있습니다.

1.행동을 바꾼다

2.인지를 바꾸고 행동을 정당화한다

3.새로운 인지를 통해 행동이나 인지를 정당화한다

4.가지고 있는 믿음에 의한 정보를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위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선택한 건 두 번째 방법입니다. 여우는 아무리 애를 써도 따먹을 수 없던 포도를 형편없는 신포도라고 깎아내리고 돌아섰습니다. 달콤한 향기와 잘 익은 고운 빛깔은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어차피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포도였기에 하찮은 것인 양 비하해 버린 겁니다. 그럴수록 자신은 못 먹은 게 아니라 안 먹는 게 되니까요. 여우의 이런 심리를 합리화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뜻대로 되지 않자 죄책감을 벗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를 나타냈습니다.

◇인지부조화에 빠진 주식투자자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기에 인지부조화를 경험합니다. 언론에는 유망한 투자정보가 사라지고 '당신의 재산을 지키는 법', '증시의 위기 언제 끝날 것인가' 등 우울한 기사가 대신합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주장과 믿음을 새로운 상황에 맞게 바꿔야 하지만 대다수가 생각을 바꾸는 대신 구독하던 매체를 끊어버리죠. 그래서 경제신문이나 인터넷 주식 사이트는 증시 불황 때 판매 수입이 줄어 골머리를 앓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인지부조화 때문으로 봅니다. 자신있게 투자했는데, 그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속이 쓰립니다. 이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갖고 있는 주식을 팔고 배우자,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으로 인지부조화의 원인인 정보를 끊음으로써 괴로움을 없애려고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상승하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모든 정보를 기꺼이 수집합니다.

소비자 행동에서도 인지부조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자동차를 한 대 샀는데, 여러 매체에서 이 자동차의 결함이나 단점에 대해 기사화를 한다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장점을 말하는 정보를 찾아다니며 차를 잘 샀다고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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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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