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6 08:00 (수)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3) 노새의 신념과 펀드 수익률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33) 노새의 신념과 펀드 수익률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09.19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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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조상이 말이라고 철썩 같이 믿은 노새의 무모한 도전이 낳은 좌절감
성공한 자만 분석해 결론 내리는 잘못된 판단은 ' 생존자 편향의 오류 '일 뿐
한 쪽만 믿으면 낭패 볼수도…일부 펀드 수익냈다고 투자실력 좋은 건 아냐

노새는 당나귀와 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입니다. 노새는 말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지만 힘이 아주 세고 끈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새는 무거운 짐을 지고 아무리 먼 길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어느 농장에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노새는 자기의 조상이 아주 빠르게 달리던 말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 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새는 말처럼 먹고 말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보리를 먹고 살이 통통하게 찐 노새는 기운이 넘쳐 갑자기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노새는 자랑스러운 듯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조상은 굉장히 빨리 달리는 말이었어. 그래서 나도 아주 빨리 달릴 수 있어." 얼마 후 그 마을에서 달리기 경주가 벌어졌습니다. 그 경주에는 많은 말들이 참가했습니다. 자기 조상이 말이라고 생각한 노새는 자신 있게 그 경주에 참가했습니다. "이번 경주의 우승은 내가 차지할 것이 분명해. 우리 아버지는 아주 빠른 말이었어. 그러니까 나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을 거야."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 노새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노새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말들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안 되겠어. 힘을 더 내야지."

노새는 다른 말들을 따라잡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말들과의 거리가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경주가 거의 끝나갈 때 지칠대로 지친 노새는 갑자기 자기의 아버지가 사실은 당나귀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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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은 두가지 면이 있으며 어느 한쪽만 믿고 섣불리 행동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주위의 성공담에 부풀어오르는 자신감= 노새의 부모는 말과 당나귀입니다. 처음에는 노새도 말처럼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지만 아버지가 말보다 느린 당나귀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노새가 아버지가 당나귀였다는 것을 떠올렸다면 말 경주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든 사물은 두가지 면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믿고 섣불리 행동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안 보이는 다른 한쪽을 잘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생존자 편향의 오류'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자만 분석 대상으로 삼다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실패한 사람의 패인 분석도 함께 해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나온 배경부터 살펴보죠.

2차 세계대전 때 있던 일입니다. 미군은 적지로 출격하는 전투기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 돌아온 전투기들을 분석했습니다. 대부분의 전투기는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탄 자국이 집중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따라 날개와 꼬리에 갑판을 달아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석에 참여한 한 수학자가 꼬리와 날개 부분이 아니라, 조종석과 엔진 부분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비행기는 기체 전체가 피격당할 확률이 비슷한데, 꼬리와 날개 부분을 보강한다고 전투기의 생존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보강해야 할 부분은 생환한 전투기에서 손상이 전혀 없는 엔진이나 조종석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분에 손상을 입은 전투기는 복귀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원이 아니었으면 편향된 데이터 분석으로 쓸 데 없는 곳에 두꺼운 갑판을 덧댈 뻔했던 이 사건을 두고 '생존자 편향의 오류'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일상에서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가장 쉽게 접하는 곳은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만 늘어놓은 책방의 자기계발서 코너입니다. 자기계발서는 잘 알려진 성공적인 예시만을 늘어놓고 실패 사례는 무시합니다. 실패한 사람이 겪은 좌절이나 실패의 이유를 알아야 진짜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법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편향성을 갖게 되는 것은 책속에 나오는 성공의 주문을 실패한 사람도 열심히 시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은 1%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성공한 창업자에 대한 이야기가 돌아다니기 때문에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하기가 쉽다고 착각하게 되고, 성공한 사람이 겪었던 실패한 프로젝트나 사건 등에 대해선 별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도 경쟁사가 어떻게 했더니 성공하더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만 가지고 무리하게 직원들의 업무나 제품에 적용하다 쓴잔을 들이킨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 역시 분석 대상의 내면까지 들여다 보지 않아 발생하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입니다.

"누구누구 알지? 그 애가 투자해서 대박 났대." 주변에서 누군가가 운 좋게 주식 투자를 잘 해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무턱대고 투자에 나서는 개인투자자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특출난 능력이 없는 경우 "나도 돈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가 감당했던 리스크라든가 부정적 요인은 철저히 외면한 채 말입니다. 결과는 불문가지, 대박은커녕 쪽박을 차게 됩니다.

◇"누구 대박났대"에 귀가 솔깃하다면= 이런 케이스는 한 때 휘몰아쳤던 암호화폐 투기 열풍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 암호화폐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무용담에 앞뒤 안 가리고 소중한 돈을 쏟아붓는 투기판이 벌어졌습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암호화폐가 아무런 실체가 없는 신기루라며 투자 위험의 경종을 울려댔지만 급등 분위기에 취한 투자자의 귀엔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 차례의 규제 조치가 발동되고 시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으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투자자가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책이나 신문기사를 읽다 보면 주식 투자와 관련한 오류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장기 투자에 관한 것입니다. 투자는 무조건 오래 들고 있다고 다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장기 투자는 실패보다는 성공의 확률을 높일 뿐이죠. 장기 투자 신봉자인 워런 버핏도 몇 년에 한 번씩 엄청난 손실을 입곤 한답니다. 전문가들이 장기 투자를 권하는 것은 보유 종목을 좋은 값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아무래도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회자되기 때문에 장기 투자의 유용성이 부각되고 많은 사람을 생존자 편향의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코스피시장에는 '관리포스트'라는 게 있습니다. 상장폐지될 우려가 있는 주식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일정 기간 동안 관리 포스트에서 살다가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상장폐지되면 그 종목은 투자자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집니다. 주가지수는 상장회사의 주가 변동만 집계하고 패배자의 주가 변동은 통계에서 빼버립니다.

정확한 통계수치가 발표된 게 없지만 지금까지 상장된 주식의 30%는 이런저런 이유로 퇴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증시에서 상장회사의 평균 상장기간은 10년을 약간 웃도는 정도라고 합니다. 장기 투자가 최고의 선이 아님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만약 코스피가 지난 10년 간 얼마의 수익을 올렸다고 이야기한다면 상장된 모든 주식이 그만큼 올랐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년 전에 주식을 샀더라도 오늘날 그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말도 더더욱 아니죠.

투자회사는 개인들이 생존자 편향의 오류에 자주 빠진다는 것을 이용해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투자회사가 제시한 세 가지 펀드의 수익률이 모두 좋았다고 가정해봅시다. 실력이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10개의 펀드를 출시했는데, 7개는 접고 3개만 살아 남은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회사 고객의 70%가 쪽박을 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3개 펀드 모두 수익률이 좋았다고 이 회사가 실력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펀드를 고를 때 수익률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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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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