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산업 원료인 석유화학공업 진출은 그룹의 미래를 향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
1973년 日이토추,데이진과 함께 하루 생산 15만 배럴 규모 정유공장 건설 합의
원사 공장이 궤도에 오를 무렵부터 최종건은 이미 석유 회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직물의 원사는 그 원료가 석유에서 추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꿈은 이제 '석유에서 섬유까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원사업자가 정유 공장에 손을 댄다는 것은 직물업자가 원사 공장에 손을 대는 것보다도 더 어려웠다.
최종건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꿈에 조금씩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갈 뿐이었다. 최종건은 독자적인 기술 추구와 사업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굴리면 굴릴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구상에 돌입했다.
석유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구상은 그 자체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었다. 1953년 잿더미를 파헤쳐 직물 공장을 짓겠다는 꿈은 어느덧 섬유 산업의 수직계열화에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석유 사업은 향후 선경이 나아갈 길과 관련해서도 놀라운 구상이었다. 1970년대에 진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마다 중화학공업 진출을 서둘렀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가 없는 선경으로서는 섬유 산업의 원료인 석유화학공업 진출이야말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이정표가 되었다.
최종건은 일찌감치 그 꿈을 품고 마음속에서부터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다.
1973년 초 선경은 일본의 이토추 및 데이진과 함께 국내에 일 생산 15만 배럴 규모의 정유 공장을 건설할 것에 합의한다.
아울러 그해 7월 1일에는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선경석유를 세운다. 이에 앞서 같은 해 5월 폴리에스터 섬유원료인 DMT 공장을 건설할 계획으로 선경유화를 설립하기도 했다.
비록 최종건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품은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꿈은 이후 SK가 미래에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뿌리가 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