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커지자 우리나라와 사드 갈등 등 다각 충돌…'중국산'시각 냉랭
과잉생산 정의도 학파따라 제각각…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해석이 필요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여기저기서 "중국의 과잉생산이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상하다. 중국의 저가 공세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지난 수십 년 있었던 일인데 왜 갑자기 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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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鄧小平)이 '경제'에 방점을 찍고 중국의 개혁ㆍ개방을 시작한 게 1978년 12월 일이었다.
벌써 반세기 가까이 지났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979년 1월, 중국은 미국과 수교를 맺었고, 2001년 11월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세계시장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의 개혁ㆍ개방 정책은 1989년 6월의 천안문사태로 잠시 중단됐지만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되자 다시 추진되며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끈다. 이후 세계화와 중국의 개혁ㆍ개방 정책은 한 몸이 돼 세계경제를 견인한다.
1970년대 말 이후 세계경제를 보라. 중국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지난 40여 년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자국은 물론 세계경제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각인시켰다. 너무나 익숙하고 명확한 특성을 갖는 '꼬리표'다. 싸고, 또 그 때문에 품질이 좋지 않다는, 말 그대로 '싸구려'라는 특성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중국산 싸구려'가 홍수처럼 세계를 휩쓸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 40년 동안, 이 같은 이유로 "중국이 세계를 망친다"고 비판한 적이 있나? "중국의 저가 제품은 과잉생산의 결과"라고 말한 적이 있나? 없다. 싸구려, 짝퉁, 표절, 가짜 등의 비판은 있었어도 "싸구려를 너무 많이 만들어 문제"라는 비판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세계 여러 나라와 주요 국제기구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생산과 소비 모든 측면에서 그랬다. 이유를 보자.
■ 새로운 꼬리표 … 중국 저가제품은 과잉생산?
우선 저가 상품 공세에 대한 평가다. 지금과 달리 박수를 받았다. 중국의 저가 제품이 세계 여러 나라의 인플레이션을 억지(抑止)했다는 것이다. 이는 '저임(低賃)' 즉 노동자의 '싼 임금'에 기초한다. 세계의 많은 기업이,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중국으로 가 이 '싼 임금'의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비용이 덜 들어간, 상대적으로 싼 제품을 세계에 내놨다. 이런 식으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된다.
이로써 중국경제도 성장한다. 그러자 중국 노동자의 임금도 오른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이나 중진국 수준은 아니다. 세계는 중국 노동자의 임금 상승에 대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중산층의 증가로 중국 내 시장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세계 기업의 눈앞에 거대 상품시장이 펼쳐진 것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규모의 '중간재 시장'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도 수혜를 봤다. 2004~22년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 비중은 늘 20%를 넘겼다.
중국의 저가 공세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예전에는 없던 '과잉생산'이라는 꼬리표가 달렸고 세계가 이를 비난한다. 왤까? 이 꼬리표에는, 필자 생각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감춰져 있다. 다름 아닌 '세계시장에 대한 중국의 배제'다. 세계 주요 나라들이 중국을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중국 왕따 현상'이다. "너희는 너희끼리 해 먹어"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중국의 자업자득(自業自得) 성격이 강하다. 최근 수 년 사이 중국 내 외국 기업을 탄압ㆍ배제하고 국민이나 노동자들 역시 외국기업을 함부로 했다. 기업뿐 아니다. 외국을 무시ㆍ멸시하고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미국과의 경제 전쟁이야 두 말할 것 없다. 우리나라와는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로 촉발된 '한한령(限韓令)'이 있고, 2022년 다윈항((Port Darwin) 문제로 중국-호주 간 분쟁도 심각하다. 동남아 여러 나라들과는 해양 분계선을 둘러싸고 적대관계에 놓여 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된 경제성장으로 중국은 정말 많이 컸다.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 정책이 실시됐던 1978년 2185억 달러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18조 달러로 82배 늘었다. 2010년 일본을 추월해 G2가 되더니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자 당도 정부도 국민도 모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미국과도 몸싸움을 마다 않았다. 2018년 이후 계속된 미중 무역 분쟁이 이를 말해 준다.
세계의 많은 나라, 많은 기업이 이제 중국 투자를 회피한다. 아예 사업 자체를 철수하는 기업도 많다. 삼성전자, IBM, 애플, 델, HP, 등 IT, 현대차, 미쓰비시자동차 등 자동차, 까르푸나 롯데백화점 등 유통,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등 외식ㆍ음료 체인기업들. 업종도 가리지 않는다. 자본 유출도 심하다. 당국이 아예 통계발표도 안할 정도다. 2015년 5100을 넘었던 상하이(上海) 종합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 2800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빠져 나가면 결과는 뻔하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중국 인민들은 죽을 판이다. 싼값에 물건을 뽑아 세계에 내다파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미운 털이 박혔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됐고 배제됐다. 세계는 중국에 이제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상품생산은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듯 보인다. "내수만 갖고 자급자족하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 세계 기업 중국서 철수 … "중국은 자급자족 해라"
예전에는 확실히 달랐다. 세계 주요 기업이 중국에 들어와 함께 일하고 함께 만들고 세계시장에 함께 팔았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과 외국 기업이 이익을 나눴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돈도 기업도 시설도 빠져나왔다. 이제 중국이 아무리 많은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다 해도 그 이윤을 나눠먹을 수 없다. 세계 기업들에게 중국경제는 '남의 일'이 돼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중국 상품의 물길을 닫으라"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요즘 중국에 달아놓은 꼬리표의 '상대성'을 발견한다. 세계와 이익을 나누면 세계시장을 상대할 수 있고 세계와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세계시장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시장을 상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한 상품생산은 '적정생산'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과잉생산'이 되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손에 손을 잡고 중국 상품의 진입을 불허(不許)하면 중국에서 생산한 상품은 남아돌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문가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논리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도대체 '과잉생산'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학파(學派)마다 다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는 '과잉생산'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파도 있다. 아니, 사실은 이게 주류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갔다. '과잉생산' 관련 논의는 대부분 옛날 얘기가 됐다. 과잉생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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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