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0 00:35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 여권(女權)의 기수 올랭프의 비운
[김성희의 역사갈피] 여권(女權)의 기수 올랭프의 비운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8.2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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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후 인류사 최초로 여성의 권리를 밝힌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평등한 상속권이나 이혼 같은 사회적 시민권 얻었지만 정치적 활동권 금지에 실망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793년 11월 단두대에 올라
올랭프의 혁명세력이나 대중 사이에서 '여권선언'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여성에게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지금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은 인류사 최초로 여성의 권리를 밝힌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중 제10조의 일부다.

프랑스 작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올랭프 드 구주(1748~1793)가 작성한 이 선언은 1791년 9월 발표되었다.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인간과 시민에 관한 권리 선언〉이 국민의회에 채택된 때가 1789년 8월이었으니 이 '여권 선언'은 그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였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프랑스 대혁명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시기로 혁명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여성들은 당연히 기대가 컸다. 혁명의 불길을 피해 도피했던 루이 16세를 파리로 귀환하게 해 혁명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던 1789년 10월의 '베르사유행진'을 주도했던 것도 여성들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어설프게 충족되었다. 평등한 상속권이나 이혼 같은 사회적 시민권은 얻었지만 정치적 활동권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즉, '인권선언'에서 언급한 '시민'에서 여성은 배제된 꼴이었던 것이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 권리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748년 프랑스 남서부의 몽토방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올랭프는 19살 때 2년 전 결혼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에서는 철학 살롱 등을 드나들며 당대의 정치가, 작가들과 교류하며, 노예제와 성 불평등, 사형 등 세태를 꼬집는 소설, 희곡들을 발표해 이름을 얻었다.

이 무렵 파리 사교계의 여러 명사들에게 구애를 받았으나 결혼만은 단연코 거부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기도 했지만 남편의 동의 없이는 여성은 책을 출판할 수 없다고 규정한 법 때문이기도 했다.

강제결혼과 여성의 노예화를 비난하던 올랭프로서는 여성의 참정권을 거부한 '인권선언'에 환멸을 느꼈던 것은 당연지사. 결국 '인권선언'의 각 조항에 대입한 '여성 권리 선언'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올랭프의 혁명세력이나 대중 사이에서 '여권선언'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이는 올랭프가 온건파인 지롱드당을 지지한 데다 혁명 초기에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던 탓이 컸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코뱅당의 권력자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793년 11월 단두대에 올랐다.

그녀를 단죄한 검사는 "가정을 지키는 것을 거부하고, 정치를 하겠다며 범죄를 저지른 뻔뻔한 올랭프를 기억하라"고 했다.

이건 세계사에 발자취를 남긴 여성 100인의 삶을 정리한 『최악의 여성, 최초의 여성, 최고의 여성』(나탈리 코프만 켈리파 지음, 작가정신)에서 만난 이야기다. 여성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21세기의 여권 상황은 달라졌다. 그래도 우리는 올랭프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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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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