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여력 의심 품어 저녁 자리에 '경제관련 장관' 모두 대동해 분위기 압도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건립은 더 큰 난항을 거듭했다. 최종현의 활약으로 어렵게 사업 파트너가 된 일본 데이진이 기술 이전보다 기술 합작을 강력히 고집하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든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던 최종현이 고민에 빠졌을 때, 그는 오히려 유연하게 실마리를 찾아나갔다.
"데이진 측에서 끝내 기술 합작을 고집한다면 합작 회사를 만들도록 하자. 일류 회사가 되려면 우리에게도 기술을 익힐 시간이 필요하니, 적절할 때 인수해 버리면 되지."
최종건의 결단으로 투자 비율을 5 대 5로 하고 총 260만 달러를 투자해 일 생산 7톤 규모의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을 건설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즉 선경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외자 70만 달러와 내자 16억 원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렀음에도 데이진 측에서는 최종 합의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이유는 선경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선경이 두 원사 공장을 한꺼번에 건설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데이진은 선경의 자금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나카지마 부사장을 한국에 파견했다. 이때 최종건은 다시 한번 기지를 발휘했다. 그날 밤 환영회를 열어 나카지마 부사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나카지마를 압도한 것은 그 자리에 모인 참석자의 면면이었다.
최종건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당시 이후락 비서실장을 비롯해 그의 부탁으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박충훈, 상공부 장관 김정렴 등과 동석했다. 나카지마는 그 인사들을 통해 선경의 자금 조달 능력을 굳게 믿게 되었으며, 크게 만족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선경은 1967년 3월 아세테이트 원사 공장 건설 기공식을 거행한 3개월 후인 그해 6월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을 착공할 수 있었다. 이는 국내 섬유업계가 선경과 최종건ㆍ최종현 형제를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종건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성공하는 방식이었다.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 없이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며, 그는 마침내 선경을 국내 1위 원사 메이커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