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1:35 (금)
뉴욕을 만든사람들⑱아서 밀러와 먼로㊦
뉴욕을 만든사람들⑱아서 밀러와 먼로㊦
  • 곽용석 이코노텔링 기자
  • felix3329@naver.com
  • 승인 2019.09.1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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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와 이혼 1년만에 밀러는 사진작가와 결혼… 자서전서 '먼로는 자기파괴적 인간' 묘사
'사랑해서 먼로와 결혼했었나' 의혹 일어 … 잇단 좌절을 맛 본 먼로는 결국 스스로 생 마감

아서밀러와 먼로는 진짜 사랑을 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서 밀러의 행적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밀러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해외 공연 참석차 신청한 여권 발급이 미국무성에 의해 돌연 거부된다. ‘예술계에 침투한 공산주의 영향을 조사하는 국회 조사위원회’에 아서가 출석할 가능성이 점점 증대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미국내 공산주의자 척결 분위기인 ‘매카시 선풍’이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관계가 좋았던 시절의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그러나 둘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결혼했고 특히 아서 밀러는 이혼후에도 먼로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등 이중 성격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관계가 좋았던 시절의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그러나 둘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결혼했고 특히 아서 밀러는 이혼후에도 먼로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등 이중 성격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지성과 육체의 세기적 결합’이라고 언론에서 표현했으나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정치적으로 좁혀진 입지를 탈출하기 위해 마릴린 먼로를 전격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도 했다.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방송뉴스는 종일 이런 내용을 흘렸다.

아서가 조강지처를 버린 사실도 공개된다. 먼로를 만나기 전까지 아서 부부간의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서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가정생활을 돌보던 아내였다. 아서는 고심했지만 결과는 이혼였다.

FBI 검찰조사가 임박하자 마릴린과의 교제사실을 언론에 흘린다. 시민들은 열광했다. 결국 검찰당국은 여론의 힘에 뒤로 밀려난다. 그녀의 치맛속으로 숨어 소나기를 피한 셈이다. 백치미 마릴린이 아서에 접근한 마음은 오히려 순수했다.

그녀는 아서와의 결혼생활에서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 이 마지막 결혼 생활에서 여성으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했다. 하지만 자궁 외 임신으로 사산하고 난 후 마릴린은 좌절한다. 심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었던 먼로는 매스컴의 집요한 추적, 결혼한 아서에 대한 열등감, 우수한 연기자가 되려는 강박 관념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가 지속된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랑을 합시다'라는 영화는 실패하고 함께 공연한 이브 몽땅과 염문까지 뿌린다. 1961년에 아서가 그녀를 위해서 대본을 써 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misfit)'에 출연했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호응은 얻지 못한다. 결국 영화개봉 1주일 앞두고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참지 못한 아서는 마침내 이혼을 발표한다.

아서는 이혼 후 1년도 안된 1962년 사진작가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그리곤 그의 자서전 「타임벤즈(Timebends)」에서 마릴린을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망령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끝내 파멸하는 여성’으로 묘사했다. 또한 1992년 한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녀를 ‘극도로 자기 파괴적인 사람’으로 묘사한 후 “모든 에너지를 쏟아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결혼을 발표 할 때의 입장과는 정반대였다.

아서는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알던 여자는 ‘마릴린 먼로’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살아야 했다. 우리의 결혼은 그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죽였다.”라고 알쏭달송한 말을 하기도 했다. 2005년 그는 89세를 일기로 코네티컷 주의 자택에서 심장 지병으로 타계한다.

'백치미'와 '지성미'의 조합, '아서 밀러를 닮은 얼굴에 마릴린 먼로의 머리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라는 농담도 세간에 퍼졌다. 그 둘은 지금 모두 갔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궤적들은 뉴욕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그녀와 그의 얼굴이 새겨진 관광상품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울어져가는 집안에서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몸소 겪은 사회 밑바탕의 경험. 이건 그를 작가로 키워냈다. 비판적인 시각이 그 때 싹 텄다. 일종의 자아 실현이고 자기 만족이었다. 그것이 그가 이 사회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고 헤쳐 나가고자 하는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를 적절히 활용했고, 결국 그녀를 결정적인 순간에 버렸다. 지식인의 나약성과 개인 이기주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아닐까. 작품으로서 그는 유명했지만 일생의 행적속에서의 덕행이나 겸손한 자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고 얼마 후 그녀를 버린 후 바로 다시 결혼한다.

'마밀린 먼로는 관능적인 애인이었으나 모든 면을 용서해주는 여자는 아니었다' 라면서 그녀에 대한 공격은 여전했다. 그와 헤어진 얼마 후 먼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 미스터리’가 지금도 꼬리를 물고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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