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인이 보스턴에서 인도 캘커타까지 얼음을 유통하는 등'얼음산업' 보편화
아이스크림 대중화되자 1883년美잡지는"공장서 찍어내는 구정물"이라며 비판

"끔찍할 정도로 달고, 지독할 정도로 차갑고 벽돌처럼 단단하다. 좀 더 비싼 우유 대신에 스웨덴 순무를 걸쭉하게 갈아서 베이스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이게 뭘 가리키는 걸까. 놀랍게도 여름이면 불티나듯 팔리지만 겨울에도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 만인의 디저트 아이스크림을 두고 한 이야기다.
말한 이는 19세기 영국 작가 앤드루 튜어. 그는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호키포키라는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두고 이렇게 혹평했다.
더위에 지쳐 뒹굴거리다 아이스크림의 유래 등이 궁금해 『디저트의 모험』(제리 퀸지오 지음, 프시케의 숲)을 들추니 이런 대목을 만났다. 1805년만 해도 파리에서 상류층이나 먹던 아이스크림이 19세기 후반쯤에는 요리 전문가만이 아니라 노점상에까지 등장하자 전문 제과사와 엘리트 계급이 '거리의 디저트'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과학기술의 발달 덕이 컸다. 16세기 나폴리의 연금술사들이 얼리는 법을 실험하다가 눈이나 얼음에 소금이나 질산칼륨을 첨가하면 다른 물질을 얼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신기술을 이용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17세기 후반에는 술과 크림을 얼리는 법이 개발되었다. 그 덕에 과일 주스나 크림으로 만든 얼음과자 셔벗(sherbet)가 등장했고 19세기부터는 젤라토라는 이름이 사용되기에 이른다.
산업혁명 이후 발달은 더욱 눈부시다. 여름이면 오직 부유층만 즐길 수 있던 얼음을 상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프레더릭 튜더란 미국인이 보스턴에서 인도 캘커타까지 얼음을 유통하는 등 '얼음산업'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면서 대중들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얼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얼음을 구하기 쉬워지면서 아이스크림을 생산, 판매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유명 셰프 등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비법'으로 전해지던 아이스크림을 일반 주부들도 만들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었다.
1843년 미국 여성 낸시 존슨이 최초의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개발했는데 외부에 설치된 L자형 핸들을 돌리면 내장된 교유기가 돌면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1844년에는 영국인 토머스 매스터스가 얼음으로 만들 수 있는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어 인공 얼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서두에 적었듯이 아이스크림 대중화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1883년 미국의 한 잡지는 "품질 떨어지는 싸구려 기성품처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스크림을 두고 "…크림이 아니라 거품만 가득한 구정물이자, 눈이 녹아내린 진창이자, 불쾌하기 그지없는 향신료 덩어리일 뿐"이라고 분노했을 정도다.
이같은 멸시를 이겨내고 대중의 디저트가 되었으니 아이스크림도 나름 '민주화의 진통'을 겪었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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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