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 당사자가 아파트나 토지의 감춰진 특성 알지 못해 부동산도 '정상선택' 어려워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철저하게 '잘잘못' 가려내는 일 해야
어느날 여우가 두루미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오늘 밤 우리 집에 오게.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차렸는데 혼자 먹기가 아까워."
두루미는 기쁜 마음으로 여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여우는 넓직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왔습니다. 그러나 두루미의 부리는 워낙 길고 뾰족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접시 위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루미야, 나처럼 먹어 보란 말이야. 그렇게 사양하면 내가 미안하잖아."
여우는 접시에 주둥이를 대고 음식을 핥아 먹었습니다. 결국 두루미는 쫄쫄 굶은 채 여우의 집을 나왔습니다.
얼마후 두루미의 집에 들어서자 두루미는 식탁을 차렸습니다. 식탁 위에는 길쭉한 병이 두 개 놓여 있었습니다.
"자,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두루미는 여우에게 병을 내밀어 권했습니다. 얼른 먹고 싶었지만 여우의 주둥이는 병 입구에만 닿을 뿐이었습니다. 여우는 음식을 한 입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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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마켓 vs 피치마켓= 두루미는 여우가 자신이 먹을 수 없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여우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우화처럼 고의이건 아니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보비대칭'이라고 합니다.
본인만 알고 상대방은 모르는 정보라는 뜻이죠. 상대방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 현실에서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 같은 환경이 자주 생기는 데, 이를 '레몬마켓(lemon market)'이라고 합니다. 레몬마켓이란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 상대적으로 시장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 혹은 양질의 재화가 시장 노출이 적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레몬은 인도 히말라야가 원산지로 서양에 처음 알려졌을 때에는 오렌지보다 쓰고 신맛이 강해 맛없는 과일로 인식됐습니다.
여기에서 비롯돼 경제에서 쓸모없는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마켓이라고 부르게 됐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속담의 '빚좋은 개살구'에서 개살구가 레몬과 비슷한 개념이네요. 이와는 반대로 구매자도 재화에 대해 잘 알아 생산자가 무한 경쟁에 노출된 시장을 피치 마켓(peach market)이라고 합니다. 피치는 우리말로 복숭아라는 뜻입니다.
레몬마켓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선택'입니다. 소비자가 제값을 주고도 제대로 된 물건을 사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식당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맛없는 돈가스를 먹으면 기분이 잡치는 건 당연합니다. 이외에도 소비자가 상품 정보에 어두워 역선택을 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고차 거래입니다. 중고차 시장에 300만원 짜리 자동차 A,B,C가 나왔다고 치죠. A는 주인이 정비도 잘하고 부속품도 제때 교환해 정말로 500만원의 가치가 있는 차입니다. B는 주인이 차를 좀 험하게 사용했고 접촉사고도 여러 번 생겨 차 가치는 300만원에 불과하지만 중고차 시장에 팔기 위해 칠을 다시 하는 등 깨끗하게 치장해 500만원에 내놓았습니다. C는 주인이 운전을 난폭하게 해 앞 차를 받는 적도 있고 정면 충돌 사고로 중요한 부품을 여러번 갈아 끼워 실제로는 300만원도 안 되지만 겉모습만 살짝 정비해 500만원에 내놓았습니다.
자동차 주인들이 차들의 상태에 대해 낱낱이 안다면 기가 찰 노릇이겠죠. A의 주인은 "저런 형편없는 차들을 500만원에 내놓네. 내 차는 조금만 손을 보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거야." 아마 그는 500만원 짜리 시장에서 나와 700만원짜리 시장으로 가려고 할 것입니다.
B주인은 "나도 양심이 없지만 더 양심이 없는 사람이 있네"하면서 더 손을 봐 비싼 값에 팔기 위해 600만원 짜리 시장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500만원 짜리 시장에는 C만 남게 되고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300만원의 가치도 안 되는 차를 500만원을 주고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품질이 나쁜 물건을 비싸게 사는 '역선택' 문제=초보 운전자가 300만원에 불과한 중고차를 500만원이나 주고 구매하는 것은 모두 역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서로 다르면, 이솝우화처럼 '정보비대칭'이 발생하면 구매자는 제값에 좋은 물건을 사지 못하고 나쁜 물건을 비싼 값에 사게 되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정보를 많이 가진 판매자가 정보를 적게 가진 소비자를 속여 부당한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부동산 시장이 그렇습니다. 한쪽의 거래 당사자가 아파트나 토지의 감춰진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선택이 이뤄지지 못합니다. 전월세 시장 역시 집주인이 주택의 하자를 숨기고 계약하거나 주택이 저당 잡힌 사실을 숨긴 뒤 세입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건물을 경매에 넘겨버리는 사례가 많습니다.
역선택 문제가 부르는 부작용으로 첫째로 꼽히는 것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입니다. 시장의 기능은 자원이 필요한 곳에 흘러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왜곡되면 자원이 낭비되고 그 시장은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시장이 잘 돌아가지 않으니 국가 경제도 엉망이 되겠죠.
모든 경제 주체들이 상품 정보가 공유되도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역선택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판매자나 기업들이 상품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겠죠. 아울러 정부의 감독도 중요합니다. 시장에서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가 없는지,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철저하게 가려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일을 담당하는 감독기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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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